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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키그레이 Jan 15. 2024

9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밴쿠버의 냄새와 소리 [1]

비행기를 처음 타 본 것은 고등학생 때다.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갈 때 대구에서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탔었다.

비행기가 땅에서 뜨면서 날아오를 때 몸이 무거워지고 귀가 먹먹해지다가 스위치를 누를 때 딸깍하는 느낌이 귀에서 들렸던 기억이 난다.


살짝 무섭기도 했고 속이 쪼금 니글거리듯 멀미를 할 듯 말 듯했었다.


이번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도 같은 반응이었다. 구름을 뚫고 위에서 내려다본 구름은 절경이었다. 구름 위를 ‘둥둥’ 떠 다닌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친구 A는 복도 쪽 자리에 앉았다. 오랜 비행 동안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화장실도 왔다 갔다 해야 하니 복도 쪽이 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중간에 앉고 50대로 추정되는 아주머니께서 창가에 앉으셨다. 아들이 밴쿠버에 사는데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보고 싶은 가족을 만나러 가는 비행은 어떤 기분일까? 타지에서(여전히 타지에 살지만) 고향집으로 가는 기차를 탈 때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일이다 싶은데,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것은 얼마나 고될까도 싶다. 나야 막상 집에 도착하면 몸이 저절로 늘어지듯 편하기야 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보러 가는 길은 꽤 기분이 좋지 않았을까? 그 바다를 건너 막상 만나면 9시간 비행의 피로가 싹 다 풀릴지 않을까?


그분의 입장과는 달라 나는 누구를 만나러 밴쿠버에 가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드물 테고 개인적 성향상 새로운 만남을 즐기지는 못한다.


사람이 되었던 장소가 되었던 지금과는 꽤 다른 곳으로 간다는 사실만으로 설레기는 충분했다. 미디어를 통해 외국의 모습을 보았기에 어떤 모습일지 상상은 할 수 있어서 기대감이 쪼금 줄어들지는 않았을까도 걱정이 되었다.


여행을 할 때, 여행 전에 정보들을 많이 습득하여 다니면 더 많은 것이 보여 더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여행 스타일은 어떨까?


여행 계획을 세우더라도 그렇게 치밀하게 세우진 않는다. 숙소 예약과 숙소의 위치, 교통수단 정도만 알아둔다. 어디를 관광하고 그곳에 가기 위한 방법은 가서 생각하자 한다. 요즘 mbti 성향에 빗대면 ‘p’일 테다.

생각해 보면 여행 책을 사긴 했었다. 내용은 잘 기억은 안 나고 인상 깊었던 구절도 없었다.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것도 캐나다 옐로우나이프에 가면 볼 수 있다 해서, '그럼 옐로우나이프를 가자!',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지?', '숙소 저렴하면서 쾌적한 곳은 어디 있을까?' 정도였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딱히 알아보지 않았다. 그냥 밤이 되면 오로라가 알아서 나오겠지 했다.

 

사실 알아본다고 하더라도 기억 못 하지 싶다. 그리고 딱히 알아보지 않고 가야 괜히 ‘새롭다’라는 느낌이 든다. ‘아! 이거 책에서 본 거야!’ , ‘아! 이거 TV에서 봤어!’ 하는 감흥은 아직까진 없다. tv에서 본 거랑 딱히 다를 건 없네. 정도… 그 사물 혹은 역사에 대한 깊이가 없기 때문일 테다.


그래도 상관없다. 여행이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그냥 여행을 왔다는 것만으로도 좋을 테니까.


비행은 순조로웠다. 내가 비행기를 몬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별다른 불편은 없었다. 기내식은 그럭저럭이었고, 남은 과일은 챙길 수도 있어서 좋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다르게 어디든 머리만 붙이면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좁디좁은 비행기 의자에서도 잠은 푹 잤다. 다만, 9시간의 비행은 무지막지할 정도로 지루했다.


나는 시간을 계산해 보는 버릇이 있다. '이 일을 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 하는 계산 말이다. 마치 '백만 원이면 국밥이 몇 그릇이야?!'처럼 시간을 상대적으로 본다. 9시간이면 크리스마스 때 해리포터를 정주행 할 수 있는 시간이지 않나? 이처럼 시간을 상대적으로 비교해 보는 것은 때론 절망감을 준다. 


'아니! 해리포터를 다 다 봐야지만 도착할 수 있다고?'


태평양을 건너는 일은 크리스마스의 악몽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악몽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밴쿠버에 착륙을 했다. 잠이 덜 깬 피곤함과 이제부터 영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섞여 새로운 장소에서 얼타고 있었다. 너무 두리번거려서 공항경찰들에게 의심받으면 어떡하지? 했지만, 딱 봐도 아무것도 아닌 한 청년에게 경찰은 관심 없었다.


출국심사도 쉽고 간단한 영어로 몇 가지 물어보고는 쉽게 통과되었다.

"여긴 왜 왔어?"

"여행"

"얼마나 있을 거야?"

"한 달"

"누구랑 왔어?"

"친구랑"

"몇 명?"

"쟤랑 나, 두 명"


통과한 후 먼저 통과한 A가 말해줬는데, 본인은 3명이서 왔다고 잘못 말했다고 한다. 친구와의 말이 일치하지 않았음에도 심사원은 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의심받을 인상은 아님이 확실했다.


무사히 짐도 찾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공항을 나왔다.


타국으로 갔을 때 공항에서 나오면 그 나라만의 냄새가 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마늘냄새가 난다고 한다. 밴쿠버는 바다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바다의 비릿한 냄새가 확 불어왔다. 


바다의 비릿한 냄새라는 게 생선 냄새가 아니라 오히려 미역이나 굴, 조개들의 냄새에 더 가까웠다. 어쩌면 바다를 품은 도시는 이런 비릿한 냄새가 나는 건 똑같을 것 같기도 하다. 부산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비슷한 비릿함을 맡았던 것도 같다.


그리고 바닷바람은 추위에 추위를 곱해준다. 내가 느끼는 추위를 수식화 할 수 있다면 분명 그럴 것이다.


밴쿠버의 첫인상은 그렇게 비릿하고 추웠다.



[다음에 계속]




아무리 생각해도 사진이 없는 것이 많이 아쉽네요.

사진이 없어도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에요ㅎㅎ

[9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밴쿠버의 냄새와 소리]는 2부로 나누어서 쓰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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