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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키그레이 Jan 29. 2024

험난했던 시애틀 입성기

십 년 전 일을 더듬어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남겨둔 기록물이 없기 때문에 기억에 왜곡이 있을 것이고 시간 순서가 맞는지도 헷갈린다. 그래도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어느 한 포인트가 있다면, CCTV 화질을 올려주는 기술처럼 기억이 쪼금은 선명해진다.


글을 쓰다가 시애틀을 언제 갔다 왔지 생각해 보았다. 로키산맥 패키지 투어를 하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 애매했다. 일단 로키산맥에 대한 글을 먼저 쓰자라고 마음먹고, 목차를 작성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 기억을 선명하게 해주는 한 포인트가 떠올랐다.


'멀미약'이 기억의 포인트였다.


나는 멀미를 굉장히 심하게 한다. 특히 버스에서의 멀미는 늘 있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에 수학여행, 수련회 같은 단체 활동에서 큰 관광버스를 타면 늘 멀미를 했다. 멀미약을 먹어도 했고, 앞자리에 앉아도 했다. 지금이야 좋아졌다지만, 어렸을 적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나타난다. 멀리 이동할 때는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탈 수 있으면 지하철을 탔다. 시외버스를 타기 전엔 그 전날밤부터 긴장을 했다.


그리고 밴쿠버에서 시애틀로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9시간의 비행기를 타서 그런지 나는 '버스쯤이야'라고 생각해 버렸다.


아침 7시 버스였지 싶다. 날씨는 비가 올 것처럼 먹구름이 끼었고 흐렸다. 짐을 싸고 숙소를 나와 캐나다의 유명한 카페 팀홀튼에서 따뜻한 커피를 사서는 버스가 오는 곳에서 기다렸다.


버스는 큼큼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다가왔다. 승객은 몇 없었고 아무 데나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중간쯤 자리에 앉았고, 버스는 출발을 했다.


밖의 풍경은 감탄할 것은 없었다. 그저 새로운 건물, 넓고 끊임없이 이어진 도로, 그 도로를 달리는 거대한 버스와 트럭들, 가지런한 듯 엉성한 듯 도로 옆으로 줄지어진 나무들... 그렇게 한참을 밖을 바라보다가 멀미가 시작되었다. 한 번 시작된 멀미는 무엇으로도 걷잡을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토를 하고 싶었고, 버스 안 간이 화장실에 몇 번을 왔다 갔다 거렸는지 모르겠다. 버스운전사는 화장실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는 듯했지만, 의자나 바닥에 토를 쏟아내는 것보다야 그게 낫지 않겠나 했다.


어느덧 국경에 도착했고, 버스에 잠시 내릴 수 있었다. 국경소에서는 여권과 짐을 검사했다.

"라면 있어요?"

보안요원은 한국어로 라면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멀미 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보니,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는 그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 상황을 즐기진 못했다.

"없어요"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대답을 했는데, 그는 그것도 알아들었다.

라면은 가지고 국경을 넘어갈 수 없었던 것 같다. 라면 수프에 들어가는 고기 때문이라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보안요원은 설명해 줬다.

"땡큐~"


짐 검사는 빠르게 끝이 났고, 잠시 숨도 돌릴 겸 국경소의 화장실에서 다시 한번 속을 게워내었다. 앞으로 1시간은 더 가야 한다고 했다. 그 1시간 동안 몇 번 또 속을 게워내었고, 하루 같았던 3-4시간이 걸려 시애틀에 도착했다.


시애틀에서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고,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뻗어서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친구 A는 나를 위해 고맙게도 약국을 돌아다니며 멀미약과 마트에서 한국라면을 사 왔다. A는 멀미를 영어로 검색해서 말을 했다고는 했는데 알아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하듯이 토를 하는 모션을 취하며 겨우겨우 약을 구했다고 했다.



"sickmotion이라고 하면서 토하는 동작까지 하면서 설명을 하니까 주긴 주던데 멀미약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A는 어찌어찌 약을 사 오긴 했으나, 약사가 A의 모션을 제대로 해석했다면 멀미약이 맞을 것이었다. 멀미약이 맞겠지 하며 약을 받은 나는 엄청난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다. 약이라도 있으면 버스 타는 것은 무섭지 않았다.


후에 로키산맥을 가고, 퀘벡에서 토론토로 갈 때 버스를 탔는데 이 멀미약이 없었더라면 여행의 절반은 멀미로 누워있었을 것이다.


시애틀에서 A가 사 준 이 '멀미약'이 시애틀을 로키산맥보다 먼저 갔음을 깨닫게 한 기억의 포인트였던 것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다. 독일에서 온 20살 청년은 9개월 동안 세계여행 중이라고 했다. 밥을 먹는 공용공간 뒤로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 뒤에는 술을 먹고 노는 곳이라고 했다. 바 같은 곳이지 않을까 생각했고 들어가진 않았다. 분명 A도 나도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인은 우리와 같이 있다가 별다른 의사소통이 되지 않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공용공간에 조용히 밥을 먹고 고단했던 하루를 달랠 겸 쉬었다.


A가 사 온 컵라면을 끓여 먹는데, 밴쿠버에 도착한 첫날 한식을 최대한 먹지 않겠노라 했던 다짐은 없어졌다. 언제 멀미를 했냐는 듯이 속이 싹 가라앉는 것이 정말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쌀쌀하고 비가 조금씩 추적추적 오는 흐린 밤에 먹는 라면은 맛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수도꼭지를 틀어 먹는 식수가 있었다. 밥을 먹었으니 물을 먹어야지 하고 먹었는데, 그렇게 비린 물은 처음 먹어보았다. 그냥 수돗물이었는데 무척이나 비려, 가라앉았던 멀미가 다시 올라올 뻔했다.


시애틀의 첫날이 멀미로 시작해 멀미로 끝나는 것이 아쉬워서 밖을 나가보기로 했다. 미국에서 밤길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했지만, 안 나가 볼 순 없었다. 골목길로는 가지 말자고 했고 마트만 갔다 오기로 했다. 가로등은 있었지만 어두웠고 조용했다. 시애틀도 밴쿠버처럼 도로와 인도가 시원시원하게 널찍해서 걸어 다니기에는 편했다. 한국에서는 어깨를 부딪히는 순간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인데, 이곳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바로 숙소로 돌아와서 우리는 일찍 잠에 들었다.





시애틀은 1회로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쓰다 보니 쓰고 싶은 게 많아지네요.

다음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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