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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키그레이 Jan 22. 2024

9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밴쿠버의 냄새와 소리 [2]



밴쿠버 공항에 내려서 일단은 곧바로 숙소로 향하고자 했다. A와 나는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말이 지하철이지 지상으로도 나왔다가 지하로도 들어갔다가 하는 철도였다.


날씨는 꽤 흐렸던 걸로 기억한다. 비릿한 냄새 때문이었을까?


밴쿠버의 지하철에는 노란 조끼를 입은 어르신들이 표를 구매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셨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노란색 깃발로 교통정리를 해주시는 어르신들처럼 친근함을 느꼈다. 그분들 덕분에 알맞은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계단을 큰 캐리어를 들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길은 확실히 넓었다. 인도도 넓었고 차도도 시원시원했다. 10월 말에 도착을 했기에 거리에는 핼러윈 상품들이 걸려있는 상점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핼러윈에, 이 넓은 차도에서 차 없는 거리 행사를 하고 코스프레를 한 많은 사람들이 그 거리들을 거니는 상상을 하니 괜히 아무 상점에나 들어가서 뭐라도 하나 사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손에 든 캐리어가 너무 무거웠기에 일단은 숙소를 가서 이 캐리어를 던져버려야 할 것 같았다.


숙소의 첫날은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다. 방이 엄청 컸다는 건 기억에 남는다.


고생고생해서 첫 여행의 시작점에 도착했으니 일단 밥은 먹어야지!


A와 나는 근처에서 먹을 만한 식당을 검색했다. 한식은 먹지말자는 엄청난? 발언과 함께 우리는 근처 그리스 식당으로 갔다. 하얀색으로 칠한 나무 건축의 가게였고, 파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딱 그리스 같은 식당이었다. 


나는 볶음밥 같은 음식을 시켰고 A는 아마 스테이크를 시켰을 거다. 같이 나온 삶은 감자 한 알을 먼저 먹었는데, 소금에 절인 감자인 듯 엄청 짰다. 해외에서의 첫 식사는 뭐... 큰 인상은 없었다. 한 끼 때웠다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 가게가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살면서 처음 겪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라기보다는 문화차이를 처음 겪는 순간이었다. 


'팁 문화'


'팁을 어떻게 줘야 하는 거지?' '주는 방법을 직접 물어봐도 실례가 되지 않는 걸까?' 오만 고민을 하면서 밥을 다 먹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감자가 너무 짜서 팁을 주기 싫었던 것이 절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직원과 눈이 마주치면서 자연스럽게 계산을 하긴 했다. 우리를 담당했던 직원은 카드 단말기를 건네주었고, 우리는 그럭저럭 알아들은데로 시키는 대로 했다. 금액이 맞는지 확인했고, 다행히도 팁을 줄 금액을 직접 설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직접 팁 금액을 입력하는 방식이 아닌 %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15%, 20%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음식에 붙은 부가세 금액이라고 생각하여 그럼 싼 15%로 하자했다. 그 순간에는 그것이 팁 금액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결제는 되었고 우리는 팁을 주지 못했다는 그 뻘쭘함 속에서(실제로는 팁을 준 것이다!) 삐걱거리며 식당을 나섰다. 식당을 나서면서 밖의 테이블을 봤는데 다른 손님들이 그릇 아래에 현금으로 팁을 두고 간 것이 보였다. 나는 팁을 주지 못했다는 민망함으로 어글리코리안이 되어 버린 부끄러움을 느껴 재빨리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우리를 담당했던 직원을 생각했다. 그 사람은 속으로 얼마나 우리를 욕하고 있을까?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서 "아 죄송해요! 우리는 오늘 여기 처음 온 여행객이라 팁문화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당신에게 실수를 해버렸어요. 당신의 친절한 서비스에 맞는 팁을 드렸어야 했는데 말이죠.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다시 팁을 드릴 수 있을까요?" 하며 쿨하게 사과하고 이 찝찝함을 해결할까도 했지만, 현실은 아마 영어로 말도 못 해서 어버버 하다가 얼굴이 뻘게져서는 도망쳐버리는 내 모습이 떠올라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얼른 잠이나 자자 했다.


그래도 후에 팁을 주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기에, 우리가 그때 팁을 줬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행의 첫날이고 태평양을 건넜으니 당연히 시차는 존재했다. 무려 17시간의 시차로 밤과 낮이 그냥 바뀐다고 보면 된다.


A는 밤이 될 때까지 몰려오는 잠을 참으며, 현지 시간에 맞춰 잠에 드려고 했다. 나에게는 시차란 없었다. 잠을 자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점은 너무나도 부러운 그때의 나였다. 물론 한국에서 밤낮없이 잘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 않았나 싶다. 그런 나였음에도 잠을 잠깐 설친 건 아마 밖에서 들려온 대화 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창문 너머에서 아른거리는 깊은 밤이 왔다.


밴쿠버 첫날에 기억이 나는 소리는 낯선 사람들의 영어 소리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한 한국말이었다. 숙소는 1층이었고 자려고 누워있는데,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다. 남녀가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연인이 싸우는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세상 제일 재밌는 것 중에 하나가 사랑싸움 구경하는 것이지 않나?!


길을 가다가도 멀리서만 봐도 서 있는 남녀의 자세만 봐도 싸우는 중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둘 다 미동도 없고, 팔짱을 끼고 있으며 노려보는 듯한 시야는 괜히 지켜보는 내가 긴장하게 된다. 행여나 옆으로 지나가다가도 눈 마주치지 말아야지 하지만 귀는 쫑긋하고 지나간다.


그런 사랑싸움을 한국인들이 캐나다 밴쿠버에서 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한국인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하필 내가 온 날,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 앞에서 나와 같은 국적의 연인들이 싸우고 있다! 그때 유튜브를 했었다면, 분명히 찍었겠지.


아무튼 싱겁게도 밴쿠버에서의 기억이 나는 소리는, 한국말로 밴쿠버 길거리에서 싸우는 연인들의 목소리였다.


"여기 숙소 바로 앞이야. 사람들 자는데 다른 데 가서 얘기하자."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했다.


마치 내가 듣고 있는 것을 본 것처럼 그 사람은 계속 조용히 하고 다른 데 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는 것보다 내가 잠드는 것이 더 빨랐고 여행의 첫날이 긴장감의 연속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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