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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키그레이 Jan 07. 2024

친구에게 전하는 감사 인사

여행준비

2014년 3월 즘이었나..


 만화책 카페에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한 명(B라고 지칭하겠다)이 캐나다로 워홀을 떠나게 되었는데, 자기가 캐나다에 있을 때 여행을 오라고 했다. 다른 친구 녀석(A라 지칭하겠다)도 갈 의향이 있었는지 같이 가자고 했다.

 글쌔… 여행은… 그것도 해외여행은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세계 태마기행’,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같은 여행 채널을 좋아했고 현재도 여러 여행 유튜버들을 구독하고 있을 정도로 여행을 콘텐츠로 한 영상을 좋아하긴 한다. 그렇지만 막상 여행을 간다는 생각을 하면 굳이…


 제일 큰 이유는 돈이었을 테다. 돈을 벌어야 하고, 여행 계획도 세워야 하고, 영어를 쫌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여권은 어떻게 발급받고 며칠 만에 나오며 얼마를 벌어야 하지? 하는 여행에 관련된 일련의 준비과정이 모두 귀찮았다.


“난 안 갈래.”


 당연히 나는 거절했다. 그 고생을 해가면서 집 밖을 멀리 나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친구들은 지지 않았다.


 정확한 대화는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뭐 때문에 대화를 하다가 화가 났었던 건 기억이 안 나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이란 게 돌이켜보면 그때의 감정은 꽤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데 구체적인 상황은 잘 기억이 안 나더라. 감정이 오래간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닌 듯하다.


“아! 가! 간다고! 가면 될 거 아냐! “


 아무튼 나는 홧김에 친구들의 꾐(혹은 설득)에 졌고, 11월에 여행을 가기로 약속을 했다.


 한 달을 가기로 한 만큼 일단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대략 4-5백은 있어야 할 듯했고, 방학을 하는 6월부터 3달 정도 일해서 4-5백을 벌 수 있는 일 중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비록 3달의 기간이었지만 한여름에 택배 알바의 경험은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잊을 수 없을 거다.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일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7시 40분까지 도착해서 한 시간 정도 구역별로 택배를 하차 후 차량에 싣는다. 그리고 서류를 챙기고 사수를 따라서 돌아다니며 택배를 전달하면 된다. 단순한 듯 하지만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침에 백화점을 먼저 들르는데 백화점이 10시부터 10시 20분까지 직원 교육을 하느라 택배원들의 출입이 거절되었다. 그래서 10시 전에 도착해서, 다른 회사의 수많은 택배차량과 택배원들을 뚫고 20박스가량을 실은 수레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매장까지 옮기고 내려오는 아침 미션을 매끄럽게 클리어해야 시작이 좋았다.

 백화점을 클리어하고 몇몇 약국들을 돌아다니면 점심을 먹는다. 점심 먹고 큼직큼직한 병원과 그 주변의 약국과 화장품 가게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택배들을 전달한다.


 차량의 에어컨이 빵빵하더라도 내리면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고 어디서부터랄 것도 없이 땀이 나온다. 더 이상 나올 땀도 없지 않나 생각도 들지만 나오는 땀은 멈출 줄을 모른다.


 가끔 들르는 안경점에는 마트에 있는 커다란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는데, 고생하신다고 아이스크림을 받기도 하는 낙이 있다.


 그렇게 하루치 물품을 다 보내고 오면 5-6시쯤 되고 퇴근한다. 밥을 먹고는 바로 뻗어 잔다.


 언제쯤 적응될까 싶은 그런 일상을 3개월을 보냈고 450만 원을 모았다. 회사에서는 2주만 더 하고 돈 더 모아서 놀러 가라고는 했지만, 난 하루도 더 할 수 있는 의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2주야 눈 딱 감으면 지나갈 시간이고, 그 돈으로 선물을 더 사든 맛있는 것을 더 먹든 할 수 있는 돈이었지만 해낼 자신이 없었다. 일 시작 후 3개월 지난 마지막 날만을 고대하며 버텨온 나에겐 하루를 더 한다는 것마저 할 수 있을 의지가 없었다. 마치 군대 전역할 날만을 고대하며 버텨온 군 생활처럼 빨리 벗어날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날의 알바는 끝이 났고, 목표했던 금액은 다행히도 마련했다.


"나는 오로라를 보러 가고 싶어"


 친구 A와 여행 코스를 짜면서 오로라를 보러 가자고 했다. 캐나다 옐로우나이프라는 중북부 지역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이왕 가는 거 신기한 건 봐줘야지.

 A는 흔쾌히 승낙을 하였고, 우리는 여행할 지역과 숙박 교통 편들을 미리미리 예약하고 각자의 스케줄을 공유하며 계획 갖춰나갔다. 뭐 솔직히 A가 거진 다 준비를 해주긴 했다.


 그 사이 친구 B는 토론토로 워홀을 떠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10월까지도 뭔가 별다른 설렘은 없었다. 여행에 그리 관심도 없었기에 굳이라는 태도였다. 떠난다는 것은 나에겐 회피의 의미가 가장 컸다. 그 시절의 나에겐 공부로부터 일로부터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나에겐 떠난다는 것이었다.

 놀러 가고, 세상을 보러 간다는 것은 나에겐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떠나는 날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비행기를 놓치지는 말자는 생각은 했었다.


 그때의 만약에 내가 여행을 기대했다면 더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없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좋았어라고는 확실히 대답할 수 있을 만큼은 분명 좋은 여행이고 경험이었다.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한다. 그때 가보지 못했다면 나는 여행을 해보았을까?

확신은 없지만 여전히 굳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았을까?

'굳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여행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다만 나도 여행을 좋아하긴 하는구나 하는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했을 뿐이다.


 그때의 집돌이인 나를 돌아보면 내가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황소고집을 버텨내며 여행으로 이끌어 준 친구들 덕분인 것은 틀림없다. 덕분에 10년이 지난 지금도 추억하고 이렇게 부족한 글로 써보는 것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쉬운 건 분명 있다. 이때를 위해 찍어둔 사진을 잘 정리해 둘 걸...


 친구들은 서로 다른 도시에서 열심히 살고 있어서 만나서 밥 한 끼 먹을 일이 있을까 싶지만, 언젠간 그런 날이 온다면 덕분에 좋은 여행을 했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어서 고마웠다고 말은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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