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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키그레이 Feb 05. 2024

추적추적거리며 시애틀 돌아다니기

아침이 되었고 먹구름들을 뚫고 햇볕이 공기를 데웠다.

그렇지만, 도로는 어제부터 오늘 새벽까지 내린 비에 젖어있었다.


시애틀은 나에게 어떤 곳이었을까?

여행한 곳은 캐나다이고 잠시 들른 곳이 시애틀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시애틀이 더 자주 생각이 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케리 공원'에서 바라본 시애틀의 풍경이었다.

(공원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아보았다)

(출처: 픽사베이)


내가 찍은 사진도 아니고, 사진처럼 맑은 날씨도 아니었지만 스페이스 니들에서 바다까지 보이는 그 풍경을 잊을 수는 없었다. 미국과 캐나다는 전체적으로 큼직큼직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도로가 넓어서 눈으로 들어오는 풍경들이 확 트인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확 트인 공간에서 오는 조금의 어지러움이 있다. 층고가 높거나 확 트인 곳에 있으면 답답함이 확 풀리면서 시원한 감정을 느끼는데, 오래 보고 느끼다 보면 빨려 들어가는 어지러움을 느낀다. 눈의 시야각이 있는데, 눈은 계속 나도 모르게 이 시야각을 넘어가는 풍경들을 보며 거리나 높이를 계산하여 뇌로 막 집어넣는 느낌이랄까. 계속 뇌가 그 광활함을 느끼려고 분주히 움직이다 보니 과부하가 걸리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 위의 사진처럼 평면으로 느껴진다.


시원시원한 풍경과는 다르게 이곳은 조용했다. 주택가고 공원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볍게 산책하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의 발이 비가 내린 도로에 맞닿을 때 나는 질펀한 발소리만이 들린다. 이곳에 산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 곳은 여행을 하면서 여기가 처음인 것 같다. 시원하게 뚫린 공간과 분주하지 않은 조용한 이곳에서 그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여유를 나도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의 현실도 내 기대감과 다를 테지만 서도,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나도 조용하게 하나의 풍경처럼 벤치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힐링은 되었다.



그리고 생각나는 곳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이다.

(출처: 픽사베이)


점심을 먹을 겸 스타벅스 1호 점도 들려볼 겸 관광객이라면 대체로 들리는 유명한 마켓이었다. 마켓 입구에서 해산물을 파는 상인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바다를 풍경으로 하는 대관람차가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정오쯤 되어 먹구름이 조금씩 걷히며 해가 바다를 쨍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바다 옆으로 잘 닦여진 도로를 조금 걸어가 'Red Robin'이라는 햄버거 집으로 갔다. A와 나는 햄버거를 각자 하나씩 시키고 어니언링을 시켰다. 버거킹에서 나오는 조그마한 어니언링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양파를 슬라이스 한 크기의 어니언링이 링 던지기 놀이도구처럼 나왔다. 햄버거는 다 먹었지만, 기름진 어니언링은 끝내 다 먹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는 무선단말기로 '팁'을 주는 방법을 직원에게서 배웠다.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용기를 낸 A가 직접 물어봤을 것이 확실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캐나다 첫날 그리스 음식점에 두고 온 찝찝함(팁을 줬는지 안 줬는지)을 떨쳐낼 수 있었다.


햄버거를 먹고 올라오는 길에 마켓 건물 안의 상점들을 돌아다녔다. LP판을 파는 곳에 들어가 오래된 서점에서 뭔지도 모를 책을 둘러보는 것처럼, 뭔지도 모를 음악들을 뒤적거리다가 나왔다. 그리고 코믹스상점으로 들어가 관련된 만화책과 굿즈들을 둘러보았다. 평소 좋아했던 '닥터 후'의 굿즈들을 보고서는 눈이 돌아간 나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달렉'과 '타디스'를 샀으며, 여행 내내 숙소에서 고이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고는 했다. 


"나 진짜, 너 그렇게 환하게 웃는 거 이때까지 지내면서 처음 봤다."


후에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가끔 A와 그때 여행을 얘기할 때, A가 나의 웃는 모습을 시애틀의 조그마한 상점에서 봤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그래도 나는 즐거울 때 잘 웃는다고 생각하는데, 타인이 보는 나는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요즘따라 재미있는 것이 없는 일상에서 그때의 내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싶기도 하다. 나도 '저렇게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이 있구나'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 살아가면서 참 필요한 기억이지 싶다. 혼자 갔다면 몰랐을 나의 모습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되니 그것 또한 같이 가는 여행의 장점이 될 듯하다.


신나는 발걸음은 스타벅스 1호점으로 향했다. 스타벅스 1호점은 엄청 조그마했다. 슬슬 저녁때라 커피는 먹지 않고 기념품을 사려고 했다. 디자인이 하나같이 별로긴 했는데,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은 제고가 없었다. 그나마 제일 평범해 보이는 걸로 샀다. 

직원들의 체격은 꽤 컸다. 여성분이었음에도 나보다 키가 컸다. 물론 나는 키가 작다. 텀블러 제고가 있는지 직원에게 물을 때, 그 여성직원은 마치 귀여운 꼬마아이와 눈을 맞춰 주듯이 테이블에 몸을 앞으로 기대어 눈높이를 나와 맞춰주려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친절했기에 굴욕감이 들지는 않았다.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이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생각보다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또 가본 곳들을 생각해 보면, '워싱턴 대학교'를 산책하며 학교 도서관을 들어가 보았다. 학교 안에서 자전거를 타는 한 사람이 교통신호에 맞춰 빨간불에 멈춰서는 것을 보고 '뭐지?' 했던 놀라왔던 순간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벌집 같은 틀에 통유리창으로 되어있는 놀라운 건물인 '시애틀 공공도서관'에서 한국 책들도 있는지 찾아다녔다. 밤이 되어 대형마트 푸드코트에서 볶음밥을 먹었고, 콜럼비아 센터 73층에서 시애틀의 주황빛 야경을 보았다.


'잠깐만 시애틀에서 이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고?'


하루 만에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2박 3일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1박 2일이든 2박 3일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밴쿠버로 돌아가 로키산맥 패키지 투어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멀미'에 대한 긴장으로 근처 건물의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 화장실의 변기 칸은 문이 있는데 없는 듯했다. 분명 문이 있는데 밖에서 보면 얼굴이 훤히 보이도록 문이 달려있었다. 하체만 가리는 정도의 문이었는데 이 정도면 하체도 보일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용도로 문을 달아둔 거지 했다.


결국에 나는 차마 그 변기에 앉을 수 없었고, 그냥 손만 씻고 나왔던 기억으로 시애틀의 기억은 끝이 난다.




다음 주에는 로키산맥 패키지 투어를 시작하겠습니다.

많은 호수들을 보고 했던 것 같은데, 호수 이름들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아서 큼직한 기억들 위주로 쓰고자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스스로에게 늘상 하는 말이지만...

이번 한 주에도 소소한 행복을 잠깐이라도 즐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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