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알 포스트의 드럼과 별마당 도서관의 편안한 리듬
세계적인 문화공간으로 유명해진 별마당 도서관,
그 거대한 서가에서 내가 정작 느낀 것은
뜻밖의 '자유'였다.
이곳엔
흔한 공공장소마다 붙어 있는
<하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하라는 질책도,
앉거나 기대지 말라는 규제도 없다.
사람들은 계단에 주저앉아 책을 읽고,
때로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그 너른 허용이,
쉼표가 드문 이 도시에서 드물게 허락된 숨구멍 같았다.
이곳은 규제가 아니라 머무름이 주인이 되는 공간이었다.
내 손에 들린 잡지 속 한 노(老) 뮤지션의 얼굴이 유독 평온해 보였던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설적인 재즈 드러머 알 포스터(Al Foster)를 만났다.
잡지는 그의 사후에 발매된 라이브 앨범 《Live at Smoke》를 소개하고 있었다.
알 포스터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가장 신뢰했던 드러머였다.
그는 오랫동안 마일스 데이비스의 가장 가까운 박자로 남았고,
소니 롤린스, 허비 행콕, 조 헨더슨, 맥코이 타이너 같은 거장들과도 함께 연주했다.
그런데 알 포스터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얼마나 많은 거장들과 연주했는가가 아니었다.
그는 평생
자신을 가장 크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가장 잘 들리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알 포스터의 드럼은 앞으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빠지면 음악은 갑자기 중심을 잃는다.
누군가 더 밀고 나가야 할 때는 받쳐주고,
누군가 지쳐 보이면 공간을 만들고,
음악이 너무 뜨거워지면 조용히 온도를 낮춘다.
어쩌면 알 포스터의 연주 역시 <하지 마시오>가 없는 공간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기교를 밀어붙이는 대신,
다른 이들이 마음껏 선율을 펼칠 수 있도록 너른 마당이 되어주었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왜 그를 오래 붙잡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힘은
속도에도, 기술에도 있지 않았다.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신뢰.
그것이 그의 리듬이었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가 마지막까지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전성기의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알 포스터는 80세가 넘어서도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그들의 감각 속으로 기꺼이 들어갔다.
이미 거장이었지만
여전히 배우고,
여전히 듣고,
여전히 새로운 음악 앞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Simone's Dance〉는 딸 시몬을 위한 곡이다.
거친 재즈의 세계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결국 그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것은 가족이었다.
그 곡을 듣고 있으면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내 가족사랑 쪽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알 포스터를 보며
지속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지속은
견디는 일이 아니라
같은 자리로 계속 돌아오는 힘인지도 모른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시대가 달라져도,
박수가 줄어들어도,
다시 연습실로 돌아가고,
다시 무대로 돌아가고,
다시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는 힘.
일정한 주기를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계추처럼,
그의 드럼 스틱은
매일 아침 다시 태어나는 태양처럼 성실하게 돌아왔다.
화려한 변주보다 무서운 것은
어김없이 제 박자로 돌아오는 그 지독한 성실함이었을 것이다.
알 포스터는
전성기를 반복한 사람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현재를 살아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오래 버틴 사람이 아니라,
오래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
누구나 주저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의 계단처럼,
그의 리듬 역시 누구든 들어와 쉴 수 있는
넉넉한 쉼표였다.
나는 이제,
견디는 사람보다 돌아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