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꽃 앞에서 조금 젊어졌다​

한국 · 머무는 순간, 다시 피어나는 감정

by Mansongyee



백화점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전시를 만났다.
오픈된 공간 한 벽면에
갑자기 다른 시간이 열려 있었다.

그 화사한 꽃들과 마주친 순간,
젊은 시절의 어느 날과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안쪽에서 맑은 기분이 샘솟듯 번져왔다.

현대백화점
갤러리아이엠(Gallery I am)
김태린 작가의 개인전 <시들지 않는 꽃을 피우기 위해>

나는 자석처럼 이끌리듯
그 노란 꽃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기억처럼 피어 있는 꽃,
감정으로 번진 색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는 느낌이 일었다.

그때
어떤 음악이 떠올랐다.
바로 이름이 붙지 않는
익숙하지만 멀리 있던 선율.

잠시 후에야
그 음악의 이름이 따라왔다.
에릭 사티(Erik Satie),
〈Je te veux〉 나는 당신을 원해요.

이 곡은
사티가 생계를 위해

카페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시절,

사람들 곁에서 흘려보내기 위해 만든 음악에서 시작되었다.

대중적인 노래로 쓰였다가 이후 피아노 독주곡으로 다시 남았다.


그래서인지 이 음악에는

완성된 무대의 긴장보다 사람들 사이를 스치는 공기의 온도가 담겨 있다.


기분 좋게 몸을 흔들게 만드는

부드러운 왈츠 리듬.
그 리듬이 그림 속 꽃들에 닿자

바람이 스치는 것처럼 살랑이며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몸은 나이를 따라가고 있지만
그 꽃들 앞에서는
마음이 먼저 다른 시간으로 건너갔다.

화사함은
나이가 아니라 상태라는 듯이,
그 순간의 나는
조금 더 사랑스럽고,
조금 더 순수한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래서 이 음악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열정적인 고백을 담고 있지만
그 멜로디는 무겁지 않다.
과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

그 꽃들도
그 음악처럼 그렇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 꽃이 왜 시들지 않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옆에 있는 작가의 서문을 읽고
다시 꽃 앞에 섰다.

작가는 말한다.
꽃은 끊임없이 피고 지며
시간 속에서 반복된다고.

하지만 이 꽃들은
그 순환의 한 장면을 붙잡아 둔 것이 아니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감정,
머물고 싶었던 순간,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꽃은
시간 위에 놓여 있지 않다.
한 번 지나간 감정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피어나는 자리,
그 반복의 안쪽에서
계속 살아 있는 상태에 가깝다.

시들지 않는다는 것은
멈춰 있다는 뜻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 변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 걸음 물러나
그 꽃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림 속의 꽃이 아니라,
아직 내 안에서 시들지 못한 감정의 형태였다.



나는 이제,

시들지 않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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