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베르메르, 위작, 그리고 데이터로 다시 태어난 빛
처음에는 조금 이상했다.
이 전시는
진짜 그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 앞에서
진짜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성남시립아트센터 큐브미술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작품을
디지털로 재현한 전시였다.
캔버스도, 붓도,
그의 손도 없는 전시.
그런데도
빛은 있었다.
창가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빛,
고요하게 멈춘 인물의 시선,
질서 있게 놓인 사물들.
베르메르는
일상의 한 순간을 붙잡아
시간을 멈추는 사람이었다.
그는
빛을 그린 것이 아니라
빛이 머무는 순간을 남겼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은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느껴진다.
그 빛을
누군가는 완벽하게 흉내 냈다.
한 반 메헤렌(Han van Meegeren).
그는 비평가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화가였다.
“구식이다, 독창성이 없다.”
그 말에 그는
그들의 눈을 시험하기로 했다.
베르메르를 그리기로.
그는 17세기의 캔버스를 구하고,
안료를 만들고, 시간까지 속였다.
그 결과는 완벽했다.
당대 최고의 권위자는
그의 그림을 보고 말했다.
“베르메르의 최고 걸작이다.”
가짜는 진짜로 인정받았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반역자로 체포된다.
국보를 나치에게 넘긴 죄.
그는 말한다.
“그 그림은 내가 그린 가짜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다시 한번 베르메르를 그렸다.
세상은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진짜를 본 것이 아니라
진짜라고 믿은 것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빛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시간을 드러낸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수많은 그림이 미술관에서 내려왔다.
진짜라고 믿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진짜가 없는 전시장에 서 있다.
원작은 없다. 데이터만 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빛을 본다.
이 남자는
지도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려는 순간에 서 있다.
창가로 들어온 빛은
그의 손이 아니라
생각이 머무는 자리를 비춘다.
베르메르는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발견하기 직전의 시간을 그렸다.
그래서 이 장면은
지리를 설명하는 그림이 아니라
‘알아가는 순간’을 붙잡은 그림이다.
베르메르는 빛을 그렸고,
반 메헤렌은 그 빛을 속였고,
우리는 그 빛을 다시 데이터로 보고 있다.
이쯤 되면 묻게 된다.
진짜는 손으로 그린 것인가,
눈으로 믿은 것인가,
아니면 마음이 받아들인 것인가.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알겠다.
진짜는 어쩌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놓지 않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진짜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를 믿는 사람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