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덜어낸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나는 조금 가벼워졌다.
그래서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보이는 것 뒤에
하나의 층이 더 있다는 것을
자꾸 보게 된다.
사람의 말 뒤에,
표정 뒤에,
하루의 장면들 뒤에
조용히 숨어 있는 것들.
그 이면은
나를 현실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피하지 않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도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
그래서
쉽게 말하지 않게 되고,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된다.
대신
고개를 낮추게 된다.
그리고 그 낮아진 자리에서
이상하게도 시야는 더 넓어진다.
아직도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글을 쓰면서
나는 조금씩 자라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잘 쓰려고 애쓰기보다
그저 나에게서 시작되는 문장을
믿어 보려고 한다.
그 문장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상태는
내가 처음으로 느끼는
자유에 가까운 것일 것이다
나는 이제,
나에게서 시작되는 문장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