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기도하는 마음과 불안하는 마음
봉은사.
미륵대불 앞, 미륵전.
나는 그곳을
나의 나침반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던 해,
선행학습이 시작되었다.
학원은 테스트 결과로 반을 나누고,
어떤 곳은
실력이 맞아야 등록을 허락했다.
그 안에서 나는 자꾸 묻게 되었다.
지금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흐름을 끝까지 따라가야 하는가.
아이들의 미래는 정말 이 안에 있는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나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봉은사.
그곳이 나의 학교였다.
미륵전 안,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나도 함께 앉아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곳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자 그곳의 시간이
나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오래 앉아 있던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물었다.
“뭘 기도해요?”
그들은 분명했다.
사시를 준비하는 자식,
입시를 앞둔 자식.
기도는
목적이 분명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기도를 하는 건지,
불안을 붙잡고 있는 건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가을이 되면
입시 삼천배가 시작된다.
기도문 책자에
아이들의 사진을 붙이고
그 문장을 따라
삼천 번 절을 한다.
나도 그 안에 있었다.
입시를 위해서라기보다
모두가 하고 있는 것을
나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삼천배를 마치고 나면
마음이 묘하게 가득 찼다.
무언가를 했다는 안도감.
놓치지 않았다는 느낌.
하지만 그 감정은
기도의 결과라기보다
불안을 달래고 난 뒤의
잠시의 고요에 가까웠다.
그날
친정아버지께 말했다.
법당 안과 바깥까지 가득 찬 사람들,
그 빽빽한 삼천배의 풍경이
경이롭고 놀랍다고.
아버지는
잠깐 듣더니
“그래, 삼천배한다고 다들 서울대학 가나?”
아버지다운 말씀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기도처럼 보였던 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불안의 다른 얼굴이었다는 것을.
불안이 노력을 가장한 채
나를 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봉은사 미륵전은
나에게 답을 주는 곳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를
조용히 비춰주는 곳이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에 흔들리고 있는지를 먼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