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 위로

한국 · 떠나는 사람의 몸은 먼저 가고, 마음은 늘 조금 늦게 출발한다

by Mansongyee



현관에

운동화가 놓여 있다.


가지런히 벗어 둔

조용히 쉬고 있는 신발들 사이로

움직이지 않는 한 켤레가

유난히 깊게 눈에 들어온다.


작년

엄마 선물로 사 온 빨간 운동화.


세상에서 가장 편할 것 같아 골랐는데

한 번도 신지 않은 운동화.


나는 그 빨간 운동화를

그 자리에 두고

다시 길 위로 나왔다.


낯선 도시의 먼지가

아직 묻어 있는 내 운동화를 신고

끈을 단단히 묶었다.


돌아서는 순간에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그 빨강이었다.


몸은 앞으로 가는데

마음은 아직 뒤에 남아 있다.


엄마가 앉아 있던 자리,

문을 바라보던 얼굴,

잠들기 전 들리던 작은 기침 소리 같은 것들이

조용히 따라온다.


함께 머물렀던 시간들은

옷깃에 남은 냄새처럼,

주머니 속 작은 종이조각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말했다.

내년에 다시 오겠다고.


지금처럼

지금의 모습 그대로

잘 계셔 달라고.


그 약속을 남기고

나는 다시 길 위에 섰다.


운동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남아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조용히 놓여 있을 뿐이다.


몸은 길 위에 있지만

마음은 아직 출발을 다 하지 못했다.


그래도

새로운 현관에 신발을 벗어 두는 순간

문득 알게 된다.


걸어온 길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길은 장소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걷는 사람도 조금씩 바꾼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떠난다는 건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돌아올 자리를

마음속에 한 켤레 남겨 두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다시 돌아올 자리를 남겨 두고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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