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살고 싶은 동네를 만나다

일본 · 도요스에서 보낸 마지막 4박 5일의 덤

by Mansongyee



다시 일본으로

딸아이가 있는 맨체스타로 가는 길.
에어캐나다를 이용하다 보니
일본에서 출발하는 일정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4박 5일의 덤이 생겼다.


꼭 가야 해서 가는 곳이 아니라,
가는 길에 우연히 얻게 되는 시간.
여행에서 이런 덤 같은 시간은
생각보다 맛이 좋다.


이번 일본 여행을 거쳐서
나는 딸의 출산을 돌보러 맨체스타로,
남편은 밴쿠버로 먼저 돌아간다.


우리 부부는 여행을 가면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우리가 이 도시에서 살게 된다면 어디에서 살고 싶을까.”


그 질문을 품고 도시를 보면
풍경보다 삶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유명한 명소보다
마트와 공원,
뛸 수 있는 환경,
지하철역 주변의 분위기,
아침에 커피를 들고 걷는 사람들의 속도 같은 것이 더 느껴진다.


이번 일본에서는 도요스를 꼽았다.
강과 바다가 가깝고,
수변을 따라 러닝코스가 이어지고,
고층 아파트 사이로
생활의 온도가 느껴지는 곳.


화려한 도쿄라기보다
도쿄 안에서 실제로 살아보고 싶은 동네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지막을 도요스에서 보내기로 했다.


나는 이제,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보고 싶은 도시의 결을 따라 걷는다.


도쿄 고토구(江東区) 도요스(Toyosu, 豊洲).
이곳은 과거 공업 지대에서 도쿄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쾌적한 수변 신도시로 탈바꿈한 지역이다.


대규모 매립지를 체계적으로 개발하면서 바다와 맞닿은 곳에 산책로와 공원, 상업 시설이 함께 들어섰다.


긴자 같은 도심과도 가깝고, 쾌적한 주거환경과 타워 맨션이 밀집해 있어 젊은 직장인 가족들이 선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아침,
수변을 따라 뛰다가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공원 안에는 블루보틀커피숍이 있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탁 트인 통유리 앞에 앉았다.

넓은 잔디밭 너머로
강과 여러 겹의 도로가 지나가고 있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도로와 고층 건물은 분명 뒤에 있는데,
여유로운 내 시선 안에서는
도시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느낌이었다.


이른 봄의 옅은 잔디와 하늘빛에
눈이 익어 갈 즈음,

주황색 모자를 쓴 아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한 반이 넓은 잔디 위에서
야외 수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달리고,
넘어지고,
쪼그리고 앉고,
선생님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뒤로는 강위로 여러 겹의 도로가 뻗어 있었다.
도쿄라는 거대한 도시가
아이들의 뛰어다니는 속도를 위해
잠깐 조용해진 것 같았다.


보통 도시는 사람을 바쁘게 만들지만,
내 시야 안의 이 도시는
아이들이 뛰는 속도만큼만 움직이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니 도시 속 공원이라기보다 도시가 잠시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시간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에 앉아 있었다.


내 옆자리를 보았다. 나무 기둥 옆의 테이블과 빨간 의자는 따뜻해 보였고, 밖의 풍경은 넓고 옅어서 안과 밖의 온도가 아주 부드럽게 섞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은 카페라기보다 도시에 남겨 둔 숨 고르는 자리 같았다.


도쿄의 거대한 구조물 아래에서도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뛰고 있었고,
커피는 천천히 식고 있었다.


처음엔 아메리카노 한잔이었다.

다음 날엔 설렘,

그다음은 기다림,

마지막은 아쉬움.


나는 이제,

도시를 유명한 장소로 기억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뛰는 속도와

커피가 식는 속도로

그 도시를 기억한다.




나는 이제,

살아보고 싶은 속도로 나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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