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이 길어도, 인생은 밀리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배운 느림의 태도

by Mansongyee



캐나다의 코스트코에는 계산대가 많다.

한눈에 세기 어려울 만큼 늘어서 있다.

그런데 늘 이상한 장면이 펼쳐진다.


복도(Aisle)에서 바로 보이는

계산대 앞에만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선다.

조금만 비켜 안쪽으로 들어가면

짧고 여유로운 줄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복도 쪽에 서 있다.


이상하다.

저쪽으로 가면 되잖아.

두세 발자국이면 끝날 텐데.

사람들은 그저

앞사람을 따라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앞사람의 뒤에 서고,

그 앞사람의 앞사람을 믿고,

그냥 서 있다.


어떤 날은 직원이 나와

사람들을 유도한다.

그제야 좀 움직인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조용히 기다린다.

그런 장면은 가끔이다.


내 눈에 보이는데

그들 눈에 보이지 않을 리가 있을까.

그래도 앞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도 급해 보이지 않는다.

나만 빼고.


이제는 적응할 법도 한데

바쁜 날엔 여전히 짜증이 난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참 이해 안 된다.

나는 아직, 서두르는 쪽에 서 있다.


처음 이곳에 와서

은행에 갔을 때는 정말로 놀랐다.

은행원은 일을 아주 천천히 했다.

은행에서도

줄은 늘 차분하게 길었다.


서류를 한 장 꺼내고,

설명하고,

다시 확인하고,

미소를 짓고,

또 확인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갑갑해서 거의 숨이 막힐 뻔했다.

그날, 나는 캐나다를 은행에서 처음 만났다.


그 시절은 1월이었다.

밴쿠버답게

비가 하루 종일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은행을 나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나라에서는

비도 급하게 안 오는구나.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다.

사람만 느린 게 아니었다.

비도, 시간도, 하루도

다 슬렁슬렁 흘러간다.


이 나라 사람들은

빨리 끝내는 대신

오늘 어떻냐고 인사를 건네고,

앞지르는 대신

순서를 믿는다.


효율보다

불편하지 않은 속도를 선택한다.

처음에는 참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어떡하랴,

여기서 살고 있는데

내가 바뀌는 수밖에.


요즘의 나는

그 줄에 그대로 서 있다.

앞사람의 등을 보며

괜히 휴대폰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생각을 하나 흘려보내고,

숨을 고른다.


오늘의 코스트코에서는

잠시 열이 났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캐나다니까” 하고 만다.


이 나라의 느림은

사람을 재촉하지 않기 위한 속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긴 줄에 서도

인생이 밀리지는 않는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삶은 제 몫의 속도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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