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모금에서 하루가 열린다

버려지는 커피가 제일 아까워

by Mansongyee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커피부터 생각한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내 몸이 본능적으로 희망을
건져 올리는 방식이다.

네스프레소 캡슐을 하나 고르는 순간,
하루의 첫 장이 열린다.
대부분의 첫 선택은

부드러운 멜로지오(Melozio)다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늘 낯선 여행을 앞둔 것처럼 조금 들뜬다.

머신이 나직한 숨을 내뱉기 시작하면
향이 피어오르기를 기다린다.
이 정적의 기다림은
나에게 가장 경건한 아침의 의식이다.

어느 날
이 아침 커피를
몸이 받아주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그래서
마실 수 있는 오늘이
더 선명해진다.

밤사이 잊고 있던 향이
몸을 감싸오면
나는 첫 모금을
조용히 입안에 머금는다.

부드러운 거품이 입가에 닿으면

비로소
몽롱했던 정신이 천천히 깨어난다.
이때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에 행복하다

몸이 또렷해지면
집안일을 시작한다.
커피는 늘
품에 안고 다닌다.

서재 책상에 앉을 즈음
한 잔을 더 준비한다.
글이 잘 풀리는 날이면
한 잔이 더 늘어난다.

하지만 오후 두 시가 지나면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몸이 그렇게 말한다.

그때
남은 커피를
버리지 못하고
식탁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둔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커피는 버려진다.

이상하게도
버려지는 커피가
가장 아깝다.

아마
마시지 못한 시간이
그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이 기억하는 기쁨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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