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쥐는 연습

출발 · 비워 둔 칸에 스며든 자유

by Mansongyee


캐리어


나는 바닥에 누워 있다.
이번엔 이상하다.
그녀가 나를 열었을 때
예전처럼 망설이지 않았다.

옷을 몇 번 접었다가 다시 꺼내는 일도,
혹시 몰라 넣는 물건도
거의 없었다.


나는 기억한다.
예전의 여행들은
대비로 가득 차 있었다.


혹시 추울까,
혹시 아플까,
혹시 지칠까.


이번에는 조용하다.
칸이 비어 있다.
공간이 남아 있다.
나는 가볍다.

여행이 길어졌는데
왜 나는 더 가벼워졌을까.

그녀는 오래 앉아 있다가
마지막으로 지퍼를 올린다.

망설임이 없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는 얼굴이다.

나는 안다.
사람은 물건을 줄일 때
짐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두려움이 줄어든다.

나는 굴러갈 준비가 되어 있다.
많이 싣지 않았지만
충분하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여분의 옷이 아니라
여분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지퍼가 닫힌다.
이번 여행은 길다.
하지만
많이 챙기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그녀는
덜 쥐고도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덜 필요해지는 쪽으로 천천히 걷고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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