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 브렌트우드의 속도와 그라우스의 고요 사이
밴쿠버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문득 웃음이 났다.
청소는 이미 끝나 있었다.
와이파이로 멀리서 부탁해 둔 덕분이다.
열쇠를 돌리고 들어오니
바로 생활이 시작된다.
청소도, 부탁도, 정리도
이제는 화면 위에서 해결된다.
편리함은 점점 익숙해지고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며
조금 놀라고, 조금 감탄한다.
시대는 이렇게
사람보다 먼저 움직인다.
창밖을 본다.
내가 떠날 때만 해도
훤히 트여 있던 시야가
내가 비운 시간만큼
조용히 채워지고 있었다.
새 콘도들이
우후죽순 올라가 있다.
층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코로나 이후,
이 도시는 더 빨라졌다.
골조는 공장에서 만들어져 오고
현장에서는 조립되듯 쌓인다.
한 달 사이 서너 층이
쑥 올라간다더니,
정말 그렇다.
브렌트우드(Brentwood)는
잠만 자는 동네가 아니다.
쇼핑과 극장, 주거가 한 덩어리로 묶인
마스터플랜 커뮤니티.
건물 하나가 올라가면
주변도 함께 정비된다.
나갔다 오면
또 달라져 있다.
내가 비운 시간만큼
세상은 채워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 멀리
여전히 보이는 산이 있다.
Grouse Mountain
빌딩은
매일 키를 높이며 하늘을 가리려 하지만
눈 덮인 산은
구름 한 점을 제 어깨에 두른 채
그 모든 소란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나는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도시는 무섭게 채워지고 있었다.
비워 보려고 노력한 가방을 곁에 두고
산을 본다.
이제야
산의 높이가 아니라
산이 품은 고요가 보인다.
나는 이제,
속도를 따라가지 않고
고요를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