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 삶의 방향이 되었던 자리
이번 여정을 시작하며
나는 가장 먼저 이곳으로 걸어왔다.
공항도 아니고,
바다도 아니고,
카페도 아닌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여행은 보통 낯선 곳에서 시작되지만
이번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신발 끈을 묶던 시절,
그 자리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다시 걷기로 했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명문 대학이겠지만
나에게는
설익은 중년이 처음 자리를 잡았던 땅이다.
지도 위의 한 점이
삶의 방향이 되었던 자리.
우리는 한때
대학 잔디밭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타국만리,
두 아이를 데리고 건너온 부부.
어디에 둥지를 틀어야 할지 몰라
방향 대신
눈을 감았다.
우리와 아무 연관도 없는 대학.
졸업장도, 인맥도,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던 자리.
그러나 우리는
한국을 떠나기 전
이 점에 먼저 좌표로 찍었다.
시간을 두고
보금자리를 정하기로 했다.
맹모삼천지교.
학문 옆에 살면
향기라도 묻지 않을까.
와서 보니 더 절박했다.
콘도가 곳곳에 올라가던 시절,
땅은 넓고
선택지는 많았고
그래서 더 막막했다.
결정이 어려우면
부처님께 묻자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그만큼 선택의 길이 어두웠다.
UBC 학생회관 앞 잔디밭.
기타 소리와 웃음이 흩어지던 한복판에서
두 아이의 미래를 품은 채
눈을 감은 중년의 부부.
우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어디로 정해야 합니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질문이
가슴 안에서 맴돌았다.
한참을 앉아 있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같이 일어났다.
신기하게도
의견은 늘 비슷하게 모였다.
답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날도
우리가 정했다.
비디오숍 앞에서
중3 큰아이가
우리 중 영어를 제일 잘한다고 믿던 시절.
남편은 말했다.
“자식한테 밀리면 평생 밀린다.”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보던 때였다.
아이들에게 영어 영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
10대 점원이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남편의 표정이 굳었다.
그때 아이가 나섰다.
“아빠, 3개 빌리면 하나 더 가져가래요.”
남편은 아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앞으로 아빠 하는 일에 절대 나서지 마.”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은 씩씩거렸다.
“그 토끼 같은 애가… 그냥 말해도 되는데
살라살라 더 꼬아서 말하잖아.”
점원이 말을 꼬았는지
남편의 귀가 꼬였는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우리를 대신해 앞에 서지 않았다.
우리가
앞에 서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루트비어(Root Beer)
짐을 풀고 처음 맞은 어느 날,
한참 걷다 보니 맥주가 간절했다.
한국 대학가라면
치킨집과 호프집이 줄지어 서 있을 텐데.
UBC 주변은 조용했다.
캐나다 대학생들은
술을 안 마시나?
그러다 발견했다.
맥도널드 옆 A&W.
유리창에 붙은 “Root Beer”.
그 옆의 치킨 사진.
치킨과 비어.
이건 분명하다.
우리는 거의 환호하며 들어갔다.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갈색 액체. 거품도 있다.
첫 모금.
달았다.
묘하게 한약 같았고
치약 향 같기도 했다.
이건 맥주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았다.
말은 없었지만
같은 표정이었다.
루트비어는
맥주 흉내를 낸 음료였다.
그날 우리는
이 나라의 첫맛을 배웠다.
달고, 낯설고,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른 맛.
그 쓴맛을 기억한 채
지금 이곳을 다시 걷는다.
잘 모르면 학문 옆이 답이라고 믿었다.
지금 다시 시작해도
우리는 아마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학문을 배우진 않았지만
그 분위기 속에서
선택의 책임을 배웠고,
자존심의 경계를 세웠고,
문화적 오해를 견디는 법을 익혔다.
UBC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선택한 주소였지만
결국 우리 부부를 단단하게 만든 자리였다.
우리는 졸업장을 얻지 않았다.
대신
이민자로 사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이번 여정을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
나는 이제,
졸업장 말고 다른 것을 얻었다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