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항로 개척과 대서양 체제
이번 글의 주요 무대는 대서양과 인도양입니다. 주인공들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아스텍(Aztecs)과 잉카(Inca) 문명이 되겠네요. 이 시기부터 진정한 연결된 세계사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신항로 개척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신항로 개척이 가리키는 새로운 바닷길은 대서양을 통해 다른 대륙으로 가는 바닷길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누가 신항로를 개척하였고, 왜 그랬을까요?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기원후 1400년대 유럽의 상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찍이 유럽인들은 지중해를 통해 서아시아와 무역을 이어왔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로마제국 시기 이후 중단되었던 지중해 무역에 활기를 다시 불어넣었습니다. 제노바, 베네치아 같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주도한 지중해 무역은 14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습니다. 특히 후추와 같은 향신료는 매우 귀하면서 값어치가 상당한 최고의 무역상품이었습니다. 인도에서 서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오는 향신료는 금과 같은 무게로 거래될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녔습니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상당한 부를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대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1400년대 중반에 세력을 확장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동유럽을 비롯하여 북아프리카 전체를 점령합니다. 지중해의 절반을 장악한 오스만 튀르크는 해상 주도권을 둘러싸고 유럽 연합 함대와 싸워 이깁니다. 이로써 지중해 무역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슬람 국가였던 오스만 튀르크와 기독교 중심의 유럽 국가들은 서로 적대관계에 들어가면서 무역도 침체를 맞은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서유럽의 끝자락에 있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왕국은 이제 막 기지개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베리아반도를 점거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면서 두 왕국은 새로운 무역 경로를 개척하고자 시도했습니다. 특히 포르투갈은 왕실에서 적극적으로 이 사업을 지원했습니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 꾸준히 함대를 보냈습니다. 결국,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하게 됩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인도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에스파냐도 신항로 개척을 지원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업적을 세운 사람이 등장합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콜럼버스입니다. 콜럼버스는 본래 포르투갈에 자신의 신항로 개척 사업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해 에스파냐로 갔습니다. 에스파냐 왕실은 콜럼버스의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 함대를 지원해 줍니다. 그리고 1492년 기나긴 항해 끝에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횡단하여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게 됩니다. 물론 콜럼버스는 이곳이 인도라고 여겼습니다. 나중에 다른 탐험가들에 의해 이곳이 완전히 새로운 대륙임을 알게 되면서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이탈리아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인도로 가는 항로의 발견과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유럽에 엄청난 충격을 춥니다. 더욱이 아메리카 대륙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함대와 사람을 보내 이곳을 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메리카 대륙에 자리하고 있던 두 개의 큰 문명 아스텍과 잉카문명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스텍과 잉카문명은 각각 지금의 멕시코와 콜롬비아 지역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유럽인과 처음으로 만날 당시, 이들은 아직 청동기를 개발하지 못했으며, 석기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었으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공양을 시행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글자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유럽과 다른 문명으로 발전한 이유는 다이아몬드의 책 “총균쇠”에 잘 나와 있습니다)
에스파냐 인들은 두 문명을 자신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합니다. 탐험가들과 군인들로 편성된 소규모의 군대는 발전된 무기와 계략, 아스텍과 잉카 제국에 반대하는 부족들을 이용해 제국을 무너뜨립니다. 유럽인들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던 아스텍과 잉카 제국은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또한, 여기에는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병균의 역할도 컸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이 면역력을 가지고 있던 질병 중, 천연두는 아메리카 인들에게는 처음 겪는 질병이었습니다. 전파력, 감염력, 치사율도 매우 높았던 이 질병으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의 인구 90%가 100년이 안 되어 사망하게 됩니다. 이는 나중에 설명할 1600년대의 기후 변화와도 연결됩니다.
두 제국이 무너지면서 아메리카 대륙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차지가 됩니다. 정복자들은 이 지역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자원들을 약탈해 갑니다. 금과 은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라는 작물들을 대규모로 재배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플랜테이션 농업의 시작입니다. 한 가지 작물, 설탕과 커피, 바나나 같은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여 판매하는 이런 방식의 농업은 오늘날까지도 남아메리카 경제의 주요한 수단이 됩니다. 이렇게 대규모 농장이 지어지자, 엄청나게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나중에는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가세하여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노예로 잡아다가 이곳에 데리고 옵니다. 노예무역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에 정복되고 종속되면서, 유럽은 엄청나게 많은 부를 누리게 됩니다. 이 시기에 유럽 경제는 엄청난 가격폭등을 경험하게 되고 새롭게 등장한 기호 식품(설탕, 커피 등)들로 인해 유럽의 경제력은 이전보다 확실히 상승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럽인들이 건너가면서 아메리카에 유럽 문화가 뿌리내리게 됩니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이 비슷해지기 시작한 것이죠. 이를 두고 학자들은 대서양 체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시작이라고 명명하기도 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유럽인들이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면서 세계 곳곳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로 인한 변화 중, 최근에 주목을 받는 소빙하기 관련 학설을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