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6.25전쟁) 1950-53
한국전쟁(Korean War, 1950-53)은 다양하게 불린다. 대한민국에서는 6.25전쟁,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 중국에서는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도우다)라고 불린다. 미국을 포함한 영어권에서는 '코리안 워'라고 부른다. 명칭이 다른 만큼 각자 의미를 부여하는 지점도 다르다. 한국은 북한의 기습남침에 의미를 둔다. 반면 북한은 남한을 미국 제국주의자의 압제로부터 구해내려 했다는 데 의미를 둔다. 반면 중국은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도왔다는 지원국, 혈맹국(피로 맺은 동맹)에 의미를 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1939-45)과 베트남 전쟁(1965-73) 사이에 가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3가지 전쟁을 나란히 놓아봐도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은 오늘날의 현대 질서를 만들었다. 국제기구나 국제경제 측면만 봐도 그렇다. 베트남 전쟁도 그렇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미국은 금본위제를 포기했으며, 직접 군사 개입을 자제하게 되었다. 전쟁사 측면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은 총력전(Total War)의 상징이며, 베트남 전쟁은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승리한 게릴라전의 표상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휴전 상태로 끝났으며, 전쟁사 측면에서도 2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으로 파악된다.
그래서일까? 시중에 나와 있는 전쟁 관련 서적 중에서 한국전쟁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다. 최근에 연구성과가 좀 더 나오곤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대중들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6.25하면 기습남침, 소련제 탱크, 고지전과 백병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공군력이 전쟁의 성패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소개할 책의 결론부터 말하면, 최소한 공중전, 공습 측면에서 한국 전쟁은 정말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전까지 통했던 전략폭격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미군은 이런 교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이는 결국 베트남 전쟁의 패배에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했다.
한국 1950-53: B-29, 썬더제트, 스카이레이더스 전략 폭격 캠페인을 수행하다.
이 책은 그런 한국전쟁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전쟁 공중전을 미국의 시각에서 다룬 책이다.
https://www.ospreypublishing.com/us/korea-195053-9781472855558/
책은 도입부에서 한국전쟁 기간 동안 공군력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장 형성, 북한과 중공군 정치가들을 전략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역할
이를 위해 공군(육군과 해군이 각각 공군을 운영함), 북한의 공업 시설, 군사적 목표, 이동수단 기반시설, 발전소 체계를 파괴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3가지 큰 제약이 있었다.
첫번째 문제는 한반도의 지형이었다. 특히 미공군이 폭격 목표로 설정했던 북한은 산이 많고 대부분 1800m 정도의 높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여름과 겨울에 불어오는 계절풍으로 인해 3월과 10월을 제외하고는 작전에 많은 어려움을 격었다. 이러한 기상조건은 공군의 정밀한 폭격을 방해하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두번째 문제는 북한의 낮은 공업력이었다. 일제강점기동안 일본은 북한에 많은 발전소와 공장, 철도를 건설하였다. 물론 침략이 목적이었지만, 이런 시설들은 북한군의 전쟁 수행력에 큰 영향을 주어 반드시 파괴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 북한의 공업 수준은 매우 열악한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목표들은 쉽게 파괴할 수 있었지만,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산과 강이 많은 관계로 북한 지역은 다리가 많았는데, 당시의 폭격 기술로는 이러한 다리를 완전히 파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때문에 사실상 시설 폭격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세번째 문제는 대공포와 제공권이었다. 전쟁 초반, 미국 공군은 북한 지역을 폭격하는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으로 진격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소련공군도 중공군으로 신분을 속여 참전하였다. 당시 소련군이 사용하였던 MIG-15는 성능이 매우 좋아 공중폭격에 매우 큰 위협을 가했다. (물론 소련공군은 평양에서 원산으로 이어지는 전선 밑으로 작전을 펼치진 않았다. 스탈린 또한 확전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중국과 소련의 대공포 지원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네번째는 정치가들의 확전 우려였다. 중공군의 개입 이후, 미국은 전장을 한반도로 한정했다. 전선이 더이상 확대되어 3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그렇기에 미국은 만주를 폭격대상에 넣지 않았다. 결국 이는 만주에서 꾸준히 북한을 지원하는 병력과 물자가 꾸준히 제공됨을 의미했다. 때문에 만주를 폭격하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공군의 폭격 효과를 절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미공군은 전쟁기간 동안 전략폭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미공군의 전략 폭격 단계는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1950 6월부터 10월 까지다. 이 기간동안 미공군은 평양, 신의주, 선천 등을 폭격했으며 교량 폭파를 수행했다. 공업 시설 폭격도 조선 질소 화약 공장이나 조선 질소 비료 공장을 폭격했다. 흥남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소이탄은 사용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고전적인 폭격 목적의 달성이었다.
2단계는 1950년 11월 부터 만주에서 한반도로 넘어오는 물자와 병력을 차단하기 위해서 폭격을 개시했다. 주로 철도폭파에 주력해으며, 지상군을 위한 근접항공지원을 수행했다. 이 시기부터 소련이 미그기를 투입하고 대공포를 지원하면서 야간폭격으로 전략을 바꾸기도 했다. (정확도는 떨어졌다.) 이 시기의 폭격의 목표는 전략적으로 북한군과 중공군을 봉쇄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3단계는 공중 압박(Air Pressure)이었다. 이 목적은 매우 정치적이었다. 1952년 6월부터는 북한과 중공군을 휴전 협상 테이블에 끌어내기 위해 전략폭격을 활용했다. 여기에는 댐을 폭파하거나 수력발전소를 폭파하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되었다. 1952년 6월 부전강을 시작으로 안둥댐을 폭격했다. 그리고 농사에 쓰이는 관개 시설 댐도 폭격 대상에 넣었다. 해주 청천강, 독산댐이 여기에 해당했다. 또한 남아 있는 북한의 산업 기반 시설도 폭격 대상에 포함되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협상을 지연시킬 때마다 공중 압박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메시지가 전하는 바는 확실했다.
'전쟁을 오래 끌수록 전쟁 이후의 북한에 남아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책은 마지막에 한국전쟁 공중폭격 주는 의미를 5가지로 정리한다.
1. 2차 세계 대전 전략 폭격과는 다른 양상의 폭격전을 경험함
2. 공군력으로 적에게 거대한 제한을 가하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노력이 든다는 것
3. 적이 공업국이 아니거나 인접국까지 폭격하지 않으면 효과가 제한적임
4. 적의 공군력이 자유롭게 활보하게 되면 공군의 역할이 줄어듦.
5. 보이지 않는 적의 회복 능력(교량 복구, 도로 복구)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
또한 한국전쟁을 계기로 장거리 폭격기(B-29)보다는 제트 폭격기가 더욱 효과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군은 이러한 교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결국 베트남전에서 유사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라고 책은 마무리 한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공군력은 전쟁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적의 전쟁 수행력을 파괴하고 지상군을 방해하려는 목적이 이들의 주된 목표였다. 이런 방법은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 하마스, 헤즈볼라 전쟁에서도 볼 수 있다. 강대국은 공군력을 활용하여 끊임없이 적들의 능력을 약화시킨다. 심지어 러시아는 공군과 미사일을 활용해 우크라이나를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하려고 한다. 한국전쟁기간 동안 봤던 모습의 재판이다. 물론 요즘은 미사일의 발달로 공군의 역할이 줄어들긴 했다. 그러나 큰틀에서 미사일과 공군의 역할은 같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한국전쟁이지만, 공군력의 측면에서 새롭게 전쟁을 바라보면서 또 다른 관점을 한가지 얻게 되었다.
물론 책을 읽으며 눈길이 가는 부분도 2가지 정도 있었다.미국 역시 해군과 육군의 갈등으로 전쟁 초반에 공군력 활용에 제한이 많았다는 사실, 폭격을 수행하는 승무원들이 표적을 맞추기 어려워 갖가지 방법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폭격수들은 환경에 따라 폭격 방법을 바꿨다. 날씨가 맑으면 정상 진행, 날씨가 어둡거나 기상이 조금 나쁘면 레이더 유도 폭탄 기술 사용, 정말 날씨가 좋지 않으면 폭탄에 장착된 개인 레이더를 활용해 폭탄을 유도했다).
소소하지만 조금은 다른 측면에서 한국전쟁을 다룬 이 책 소개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