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끄적-11. 노래
내 영혼을 춤추게 만드는 양식
2차 성징이 오기 전까지 나는 노래를 곧잘 하는 아이였다.
교내 동요대회에서 상도 받고 창작동요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같은 반 친구들과 만든 교지 속 서로 본 친구의 미래라는 코너에서 나는 무대에 오른 가수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가수가 꿈은 아니었지만 기분은 참 좋기도 했다. 그리고 변성기가 한창이던 중학교 체육대회에서 목소리가 크니 응원단장을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응했다. 목청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응원상까지 받았는데 정말 목청이 터져서 목이 가버렸다. 며칠간의 묵언 후에 나온 목소리는 더 이상 음정이 맞춰지지 않는 소위 돼지 멱따는 소리가 되어버렸다. 그 후로 다시는 어디 가서 노래 잘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내 쏭과 한참 연애 중일 때 강원도 고성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동생차를 빌려서 갔는데 '에어컨이 고장 났는데 괜찮겠어?"라는 걱정 어린 동생의 말에도 5월인데 창문 열고 다니면 되지 하면서 기쁜 마음에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다니는 1박 2일 동안 5월 말의 태양은 뜨거웠다. 터널을 지날 때 말고는 창문을 항상 열었지만 식지 않는 공기에 쏭은 조수석에서 더위에 지쳐 쓰러져 있었다. 미안함이 너무 커서 재미라도 주어야겠다는 마음에 운전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노래를 불러줬다. 발라드에서 댄스, 락에 이어 트로트까지 불러 제껴주는 내 모습은 훗날 들었을 때 '정말 노래 더럽게 못하네'와 '그래도 노력 많이 하네'라는 평가였다.
지금은 식탁에서 함께 술 한잔을 하면 듀엣곡을 부르는 음치부부가 되었다. 음치와 박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아들 호은은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도망가지만 우리는 그 뒤를 쫓아가서 끝까지 춤을 추며 부르곤 한다. 부모를 닮아 흥이 많은 아들은 합창단에도 들어가서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하지만 썩 잘하지는 않는 듯해서 안타깝기도 하다.
사람이 평균 33세 이후의 새로운 노래는 잘 듣지 않는다는데 40대 중반을 가고 있는 나는 아직은 모르겠다. 연구결과와는 상관없이 '잔나비'나 '우효' 님들 같은 분들의 음악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을 느끼고 'QWER'이나 '데이식스'님들 에게서 젊음의 에너지를 채우며 '뉴진스'와 '아이브' 같은 아이돌에게서 둠칫둠칫 하는 내면의 흥을 깨운다. 내 귀에서 좋다고, 마음이 울린다고 하면 그게 언제 나온 노래이건 좋은 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내 노래 나이가 앞으로도 계속 아직 33살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