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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취한고양이 Nov 11. 2024

십분 끄적-09. 이사

내 집 마련의 꿈

  처음 우리 집이 생겼을 때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서울 근처에 조성된 안양 옆 평촌 신도시의 수많은 아파트들 가운데 가장 작은 평수 하나에 당첨된 부모님은 아파트가 짓기 시작할 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은 공사현장 근처에 가서 아파트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오시곤 했다. 새로 생기는 평촌 전체가 공사장이었기에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몰랐지만 공사현장 옆 개천 너머에서 부모님은 "저기가 진짜 우리 집이란다"라며 눈물을 끌썽이시곤 했다. 길에 바로 문이 붙어있는 단칸방을 전전하고 연탄을 때다 일산화탄소 중독에 온 가족이 죽을 뻔한 적도 있었기에 처음으로 생긴 내 집 마련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던 것 같다. 학교숙제로 부모님이 살면서 가장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을 조사하는데도 가장 기쁜 일은 아파트 당첨이고 슬펐던 일은 전세금 못 올려줘서 쫓겨날 때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그 기분을 어린 내가 짐작하기는 힘들었다. 신도시로 입주하기 전날까지도 어머니는 아파트 홍보책자를 닳고 닳도록 보셨고 이사하는 날 저녁 돼지갈비로 외식을 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 조금은 섭섭하지만 지난 43년 동안 본 어머니의 얼굴 중 가장 기뻐하시는 얼굴은 우리 형제 결혼식 때나 손주들이 태어났을 때가 아니라 첫 아파트 이사하는 날의 당신이시다.


 아내 쏭과 결혼하기로 하고 첫 집은 수유동 화계사 근처의 다 쓰러져 가는 빌라였다. 나중에 들었던 동생의 표현으로는 '양가에서 허락받지 못하고 도망쳐 나와 겨우 구한 집'이었다. 환기가 아예 되지 않아 여름에는 습기 가득 찜통이었고 겨울에는 툭하면 수도관이 얼어 헤어 드라이기로 몇 시간을 녹여야 하기도 했지만 신혼집답게 '뽀뽀동산'이라는 애칭을 가진 집이기도 하다. 부서 발령 때문에 연신내 갈현동으로 이사를 했다가 아들 호은을 낳고 집 계약 기간이 끝나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고 또 계약이 끝나갈 때 제주로 이주하기로 결심을 하고 배를 타고 제주로 왔다.


 제주에서의 첫 집은 중산간에 있는 오래된 타운하우스였다. 근처에 편의점 하나 없고 밤이 되면 앞이 안 보이는 깜깜한 곳이었다. 마당에서 노는 호은을 보며 너무 좋았지만 이웃 주민들의 텃세와 출퇴근의 불편을 이기지 못해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이사를 하였다. 그렇게 두 번의 이사를 더 하였고 지금 사는 집으로 도착하였다.


 지금 집을 계약하면서 부모님이 예전에 느끼셨을 감정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듯하다. 집 지분 중 절반 이상을 은행이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집주인의 갑질이나 계약기간의 압박 없이 이제 여기서 계속 살면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제일 먼저 들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짐 정리에 몸살이 날 정도로 힘을 쓰던 아내 쏭도 더 이상의 이사는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이 집으로 이사 온 날, 우리도 외식을 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글썽였다.


 이사는 이제 그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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