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끄적-07. 건망증
안면인식장애(?)를 곁들인..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한두 번 본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겠냐마는 그 한번 두 번을 만날 때 친해졌다고 호형호제하기로 해놓고 그 다음번에 만났을 때 먼저 알아보지 못했다가 어색해지는 상황이 많다. 상대방에게 '저 사람은 나를 딱히 기억에 두지 않는구나'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안 그러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아무리 해봐도 사람 얼굴 익히는 것이 쉽지 않다. 한두 번이 아니라 대여섯 번은 보고 나서야 이름과 얼굴이 맞게 겹쳐지는데 그것도 내 나름대로의 내적친밀감이 어느 정도 채워져야 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아들 호은도 병원에서 태어나고 산후조리원에서 나올 때까지도 신생아실에서 한 번에 찾아내지 못했다.
기억력도 썩 좋지만은 않은 듯하다. 뭔가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조금이라도 들면 머릿속의 지우개가 샥 지워버리는 듯이 바로 잊어버린다. 문제는 이것저것 다 지워버린다는 것이다. 사람얼굴은 물론이고 가족과의 추억들도 바로 지워지는 듯하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빙봉이 떨어진 망각의 계곡 속에 계속 기억구슬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가끔 아내 쏭이 예전 추억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나랑 했던 추억이 맞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나는 기억이 나지를 않는데 예전 이야기를 한다. 나와 누구와 함께 재미있게 놀았었지 않냐고 하는데 그 누구가 누구인지도 생각이 안 나고 뭘 했는지도 생각이 안 난다. 그러면 섭섭해하면서 사진을 보여주는데 그러면 아 하면서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미안해진다. 분명 고등학교 때까지 암기과목은 기가 막히게 했었는데 말이다. 그때 내 기억능력을 거의 다 써버린 게 아닌가 하는 짐작도 하게 된다.
슬픈 일, 화난 일, 우울한 일만 골라서 잊고 기분 좋았던 일만 기억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함을 알기에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노력 중이다. 당장은 나빴던 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다 이유가 있고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려 한다. 뭘 해도 자꾸 잊어먹는데 그래도 남는 것들이 좋은 기억들로 가득하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사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