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키웠던 개는 발바리었다.
지금처럼 반려견이라던가 애완견의 느낌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개고기를 먹던 그 시절 동네 잡종개는 1-2년 정도 키우다가 어느 여름날 어른들이 데리고 나가 사라지는 존재였다. 종종 개장수 아저씨가 동네를 돌며 "개 삽니다 개 파세요"하는 방송을 하고 주인이 없어 보이는 개는 다 납치해 간다는 소문이 도는 그런 시대였다.
그런 것을 몰랐던 나는 그저 좋다고 재롱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정을 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 재롱이를 부모님은 목줄이 풀어져 집을 나갔다고 하시며 새로운 강아지를 데리고 오셨다. 한참을 울다가 새로운 강아지에게도 재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두 해가 지난여름, 재롱이를 보며 입맛을 다시던 큰아버지가 결국은 재롱이를 데리고 나가셨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제 이유를 알아버린 초등학교 5학년의 나는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 후로 성인이 될 때까지 개는 키우지 않았다.
호은이 초등학교 들어가고 나서부터 개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안된다고 못을 박았지만 계속 조르는 탓에 우리 집이 생긴다면 키우게 해 주겠다고 덜컥 약속을 했다. 내 집마련은 언제 이루어질지 기약이 없었으니까. 코로나 이후 세배로 뛴 전세대출 이자에 놀라 이자낼 돈으로 집값을 갚자라는 마음으로 작은 빌라를 사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진도믹스견 한 마리가 약속대로 우리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옛날처럼 여름철 예비 보양용이라던가 애완용이 아닌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옛날 어른들처럼 가축취급을 안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내 새끼다 하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니 몸은 좀 힘들고 귀찮아도 마음은 편하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입구에서부터 꼬리를 흔들고 귀를 접으며 맞아주는 것이 참 좋다.
아들 호은의 이름은 내 이름 한 글자, 아내 이름 한 글자를 붙인 것이다. 반려견 은호의 이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