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끄적-08. 로또
이제는 3일간 꾸기로 한 꿈
매주 수요일 퇴근길에 로또를 구입한다.
로또가 처음 나왔던 시기에 나는 대학생이었다. 그때 학교 앞 술집에서 소주가 이천 오백 원이었고 로또는 한판에 이천 원이었다. 다섯 판 한 장에 만원인데 그러면 소주가 네 병이었으니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우리 패거리 넷은 당연히 소주를 선택했다. 그러다 알바비가 들어오는 날에는 호기롭게 다섯 판 만원 어치를 사고 1등이 되면 넷이서 나눠 갖자고 도원결의를 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제일 흔한 5등도 한 번 안 되는 우리였지만 로또를 사고 추첨을 하는 토요일이 되기까지 그 돈으로 뭘 할지 심각한 고민을 하는 얼간이들이었다.
최저임금도 못 받던 대학로에서도, 박봉에 시달리던 서점에서도 로또는 혹시나 하는 일주일 간의 작은 희망이었다. 결혼하고 갈현동 산동네 꼭대기에서 수많은 아파트의 불빛들을 보며 어쩌면 저 집들 중에 내 집하나가 없을까 하는 서러움과 1등은 아니어도 2등만 됐어도 참 좋겠다는 상념에 빠지곤 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해서 받는 월급은 카드값과 대출 이자, 각종 공과금에 썰물같이 씻겨 내려가고 저축은 커녕 한 달 가계예산에 마이너스가 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삶이었기에 로또 당첨 한방의 꿈은 더 커져갔다. 한판에 천 원으로 바뀌었지만 일주일에 오천 원 이상을 복권에 쓰는 것은 쓸데없는 지출이었기에 몇 만 원어치씩 사는 짓을 꿈도 꾸지 않았다.
로또를 시작한 지 어언 20년, 오만 원 당첨 두 번, 오천 원 당첨 스무 번 정도가 끝이다. 그렇게 길하다는 용꿈을 꿔도 동양의 신룡이 아니라 서양의 드래곤이 나와서 낙첨, 돼지꿈을 꿔도 돼지가 다 도망가는 꿈이라 낙첨이다. 호은과 같이 판매점에 가서 번호 여섯 개만 골라보라 했더니 해맑게 "일이삼사오육"을 불러 판매점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바다가 되는 일도 있었다. 모든 숫자의 확률은 똑같기에 어쩔 수 없이 일이삼사오육을 했다. 큰 웃음을 줬으니 그걸로 되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 로또를 사고 목금토 3일 간만 당첨되면 앞으로 뭘 할까 고민하기로 했다. 일요일에 당첨확인을 하고 월화수는 열심히 일하며 살면 되겠다. 아직 내 순서는 오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면 기다리기 편하다.
8,145,060 분의 1 이라니까 좀 한참 기다리긴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