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이 가득한 따뜻한 남쪽 섬
연신내 갈현동 산꼭대기에서 살던 시절 호은의 첫 어린이집은 왠지 뭔가 꺼림칙했다.. 부모의 수업참관이나 방문은 할 수 없었고 오로지 저녁에 올라오는 사진 몇 장으로 오늘 호은이 잘 지냈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첫 어린이집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던 것도 있었지만 유난히도 폐쇄적인 느낌이 있었다. 제일 빨리 등원해서 제일 늦게 하원했기에 선생들의 눈길은 곱지 않았다는 쏭의 말이 있었고 하원 후 사진과는 다르게 풀이 죽어있는 호은을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겼더니 이게 왠 걸.. 밝아도 이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산동네 빌라촌 한가운데 어린이집이라 마음 한구석은 미안함으로 가득이었다.
몇 달이 지나 쏭이 숲어린이집 이야기를 꺼냈다. 협동조합 형식으로 자연에서 놀 수 있는 어린이집이란다. 조합원으로 들어가려면 800만 원인가를 내야 하는데 호은을 위해서 대출이라도 어떻겠냐는 말이었지만 그럴 여유도 없고 그렇게 유난을 떨어야 할까라는 생각도 있었기에 단칼에 잘라버렸다. 미안했다.
세 살이 되었을 때 제주로 왔다..
제주로 이사 후 들어간 어린이 집은 서울에서 돈을 내고라도 보내고 싶었던 환경을 가진 어린이 집이었다. 숲놀이터에서 놀고 말도 타고 하며 점점 밝아지는 호은을 보며 제주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들어오는 직장 탓에 3년간 아들이 깨어있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에 그 미안함이 더 크기도 했다. 서울에서 일할 때 보다 더 적은 월급에 더 힘든 일이었지만 늦어봐야 저녁 6시에 퇴근을 해서 아들과 함께 하니 늦게 트인 말도 점점 늘어나고 쑥쑥 자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8년이 지나 호은은 봄날의 벚꽃을 즐기고, 한여름 바닷가 포구에서 과감한 다이빙을 하며 늦가을 억새가 가득한 오름을 거침없이 오르고, 한겨울 눈이 가득한 귤밭 비탈길에서 썰매를 타는 제주 아이로 거듭났다.
이제 곧 사춘기가 오겠지만 아직은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식탁 의자에서 점프하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그래서 허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안아주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