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끄적-16. 비(雨)
비 오는 날 아침의 단상
아버지는 40년 넘게 철근공 이셨다.
20대 시절부터 환갑이 넘어서까지 건설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하셨다. 80년대 해외 건설 붐이 일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와 말레이시아에도 가셔서 일을 하고 오셨다. 어디서 막일한다고 하면 일 끝나고 흥청망청 주색잡기를 하는 편견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술을 한잔만 먹어도 열이 확 오르는 체질이라 입에 대지도 않으셨다. 비상금이야 조금씩 챙겨 두셨겠지만 받은 월급봉투는 그대로 어머니께 드렸다. 월말이 되어 만 원지폐 가득 찬 두툼한 월급봉투를 가져오면 어머니는 검수하듯 다 세어보고 각종 적금 통장을 꺼내 꽂아놓으셨다. 어머니가 돈을 셀 때, 혹시 금액이 틀릴까 봐서 인지 몇 만 원 뺀 것이 들킬까 봐인지 옆에서 애써 태연한 척하며 눈치를 보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릴 적 웃음의 기억으로 남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공사가 중단되기 때문에 새벽부터 비가 오면 전화 한 통 하시고 집에서 쉬셨다. 그러면 우리가 등교하고 아무도 없는 오전에 한 잠 주무시고 점심때 학교 끝난 우리를 데리고 맛난 점심도 해주고 놀아주기도 하셨다. 아버지랑 함께 노는 것이 너무 좋아서 주말 오전에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곤 했다. 어설프게 오전 8시쯤에 비가 그치면 잠깐이라도 일하시러 나가시지만 9시까지 오면 휴무가 확정이기에 그 후에는 온 가족이 나들이를 가거나 아직 어렸던 동생과 어머니는 집에 두고 나와 둘이서 도봉산이나 소요산으로 등산을 가곤 했다. 그런 날은 맛있는 외식도 추가되고 저녁에 목욕탕까지 가면 금상첨화인 코스니까 그게 너무 좋아서 딱 아침 9시까지만 비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지금은 아득한 어리광 피우던 시절이다.
지금은 비가 오면 '오늘 차가 엄청 막히겠구나', '일하기 힘들어지겠구나' 같은 생각만 하는 못난 어른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아무렇지 않게 비 웅덩이로 점프하며 발을 구르고 온몸이 비에 젖어도 뛰어다니던 시절이 있었음을 지금의 아들을 보며 기억의 편린으로 떠오르곤 한다.
그때 아버지도 비오기를 바라는 철없는 아들을 보며 웃으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