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락 세대이다.
도시락과 급식의 사이에 낀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무상급식이 아니라 급식비를 내서 식권을 받아야 급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고교에서 급식을 먹기 전까지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도시락을 먹고 다녔다. 포탄 같은 보온 도시락을 열면 플라스틱 냄새가 묘하게 섞인 미지근한 김치와 김치 국물이 새어 들어간 다른 반찬들이 식욕을 꺾곤 했다. 돌도 씹어먹는다는 청소년기였지만 그때의 보온 도시락은 참 먹기가 싫었다. 새벽에 일어나셔서 도시락을 싸주는 어머니에게 보온 도시락 싫다고 온갖 짜증을 부리다가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노란색 양은 도시락통에 찬밥과 김치, 계란 프라이를 싸고 다녀 검정고무신이냐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쏭과 연애하면서 가끔 도시락을 싸곤 했다. 한강에 커플 자전거를 타러 가거나 남이섬에 놀러 갈 때면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곁들여 먹을 싸구려 와인과 후식인 과일까지 하하호호 웃으며 연애하던 시절에 3단 도시락은 몇 번을 싸달라고 해도 언제든지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호은이 자라 오름이나 숲에 놀러 갈 때에도 중간에 식당에서 먹기보다는 오름 중턱이나 숲 가운데에서 먹을 수 있도록 도시락을 만든다. 한참 땀 흘리다가 중간에 쉬면서 먹는 도시락의 꿀맛을 호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지금은 급식을 먹는 호은에게 도시락의 참맛을 알려주기는 힘들지만 가끔 현장학습을 갈 때 도시락을 싸달라는 학교알림장을 보면 솜씨를 보여줄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 있는 것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한 도시락은 만들기 어렵지만 유부초밥에 계란말이, 문어소시지를 예쁘게 담아주면 딱 호은이 좋아하는 메뉴이다. 도시락을 싸는 일 자체가 사랑을 표현하는 느낌이라 예전 어머니의 사랑도 곱씹게 된다. 도시락을 보면 호은이 '아빠 고마워 사랑해'하는데 가슴이 뭉클하다. 나는 예전에 어머니께 이런 말을 하지 않음이 죄스럽고 안타깝다.
그 새벽, 도시락을 싸주시던 어머니께 사랑한다 전화라도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