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는 매주 일요일이면 우리 형제를 데리고 동네 목욕탕에 가시곤 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시기에 가끔은 일요일에도 일을 하러 나가시기는 했지만 우리는 무조건 목욕탕을 가는 것이 집안의 규칙이었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목욕탕에 가는 날인 것처럼 일요일의 목욕탕은 동네 사람들로 북적였다. 냉탕에서 첨벙 대며 놀고 싶지만 탕 밖으로 물이라도 튀기면 어른들에게 누구 집 아이냐며 혼쭐이 나기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20여 분간 강제로 김이 펄펄 나는 온탕에 들어가 있다가 참지 못하고 몰래 찬물 수도꼭지를 돌려 미지근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금방 들켜서 등짝을 맞고 아버지는 온 사방에 죄송하다 사과를 하시곤 했다. 아버지가 때를 밀어주실 때는 살 껍데기를 벗기는 것처럼 얼마나 아픈 지 1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다른 친구들은 바나나 우유를 하나씩 물고 나왔지만 우리 형제는 아버지 기분이 좋아야 요구르트 하나 입에 물고 나올 수 있었다.
사춘기가 지나 고등학생 때 즈음부터는 더 이상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어쩌면 막일하시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해서 거리감을 두었던 것 같다. 동네 사우나가 점점 사라지고 찜질방을 겸한 목욕탕이 생기면서 아버지는 따로 혼자 가셔서 하루 주무시고 오시고 우리 형제도 각자 친구들하고 찜질방으로 놀러 가는 식으로 다녔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목욕탕은 학교에서 술 먹고 차 끊겼을 때 가는 숙소의 개념이 되어 공릉역과 석계역 근처 목욕탕들은 전부 다 가본 듯하다.
호은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 목욕탕을 데리고 갔다. 온탕에서 몸도 푹 지져주고 사우나에서 땀도 쭉 빼고 싶은데 이 아들 녀석은 덥고 습하니까 빨리 나가자고만 칭얼거렸다. 들어간 지 30분여 만에 나오기를 몇 번을 거듭하면서 목욕탕에서 탕에 들어가고 씻는 것을 익숙해지도록 만들기가 몇 년이 걸렸다. 집 근처부터 거리가 좀 있는 다른 동네까지 웬만한 목욕탕들을 투어 돌듯이 다니다 보니 이제는 온탕과 냉탕을 오고 가며 1시간을 넘게 목욕탕을 즐기고 있어 참 뿌듯하다. 목욕을 끝내고 나오면 무조건 바나나 우유를 사주는 나 스스로가 참 좋다.
어쩌면 이 아이도 곧 아빠와 목욕탕 가는 것을 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이 든다. 예전 아버지가 이런 기분이셨을까 하는 마음에 죄송스럽다.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아들과의 시간, 아버지와의 시간을 좀 더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 사소한 기쁨의 끝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