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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Jun 08. 2022

눈치 보지 않는다

나는 눈치보기 대장이었다. 어린 시절, 나보다 눈에 띄게 잘난 것이 많아 보였던 오빠, 언니의 틈바구니에서 부모님의 눈에 띄는 것이 내 삶의 목표였다. 학창 시절에는 매 학년 매번의 선생님께, 일하면서는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들의 눈에 들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끝없이 눈치를 살폈다. 영리한 고양이처럼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잘 간파하여 딱 맞는 타이밍에 원하는 것을 해냈다. 그때마다 받았던 관심과 인정, 칭찬은 달콤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달큼한 행복도 잠시 뿐.. 언제나 긴장하고 사람들을 살피는 나는, 매우 피로하고 가엾은 어린 고양이였다.


돌이켜보면 내 주의는 끝없이 상대에게 있었다. ‘나’는 없었고, 오로지 ‘상대’가 주인공인 드라마 속 조연이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눈치를 주는 상대는 없다는 것.

나의 행위를 가장 엄격하게 바라보는 ‘나’가 있다는 것.


이제는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 되면, 먼저 나의 말과 행위를 살펴본다. 하려고 했는데 안 했던 것은 없었는지, 말이 앞서지는 않았는지, 약속해 놓고 피해 가려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상대가 눈치채지 않게 살짝 뭉개고 있는 건 없는지.. 명상을 통해 지금의 나의 상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내가 나에게 정직하게 묻고 답하다 보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온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나를 못마땅해하고 있는지를.


답이 나오면, 그저 행한다. 미루고 있던 일을 행하고, 약속했던 것을 행하고, 사과해야 하면 사과하고.. 그저 그렇게 내가 할 일에 주의를 모아서 행한다. 내 주의가 지금의 나로 돌아오면, 눈치를 주는 대상, 눈치를 보는 나가 사라진다. 결국 내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던 것.


내가 보고 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의 모든 행위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바로 나다.


나는 나에게 당당하고 떳떳한가?


누군가 내가 한 말과 행위에 대해 뭐라고 한다면,

귀를 열고 들으면 될 일이다.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면, 네 하고 바꾸어보고, 그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아니요 하고 내 의견을 전하면 된다.


내가 나에게 떳떳할 때, 삶이 심플해진다.

내가 나에게 정직할 때, 삶이 가벼워진다.


내 삶의 단어장 맨 앞장에서 어슬렁거리며 자주 일상의 장면에 출몰하던 ‘눈치 본다’라는 단어가,

단어장에서 사라졌다,

저~어기 뒷장 즈음으로 쫓겨났다,

라고 말하는 삶을 꿈꾼다.

아직은 단어장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리긴 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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