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히티를 떠올린 것은내가 좋아하는 소설 '달과 6펜스'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찰스는 런던에서 잘 나가는 금융중개인이지만 오로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훌쩍 파리로 떠난다. '떠나버린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떠나버린다'는 '떠난다'에 비해 운명에 몸을 맡기는 느낌이 드는 단어다. '달과 6펜스'는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바탕으로 쓰인 작품으로, 실제 고갱은 파리를 떠나 남태평양 '타히티'로 이주하여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꽉 짜인 현실에서 벗어나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있다. 익숙한 곳을 홀연히 떠나는 그들의 '낯설게 하기'는, '살아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0대 후반, 영국 런던에서 공부하며 머물렀던 경험이 있다. 첫 회사에서 3년 반 동안 모아둔 돈을 들고 '떠나버린' 것이다. 울퉁불퉁한 나를 네모에 가두어야 했던 직장생활, 매일 이를 닦으며 이 치약만 다 쓰면 그만둘 거라는 다짐으로 버텼던 날들, 떠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바람대로 예술과 문화에 풍성하게 절여졌던 시간이었다. 낮에는 틈날 때마다 미술관과 박물관, 거리를 거닐며 이 찬란한 도시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들떠 지냈다. 어둠이 찾아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생하게 만져지던 불안감으로 한 땀 한 땀 이불을 지어 덮고 자는 날들이었다. 가난하고 불안했지만 어느 때보다 날 것의 내 욕망과 버무려진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그때는 살아있었다.
만일 지금 타히티에 간다면 어떨까?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고, '이 정도는 살아야지' 세상의 잣대를 들이미는 부모와 형제도 없고, 눈치 보거나 경쟁해야 할 사람이 없는 곳. 심지어 돈을 벌어야 할 책임이 없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당신이란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욕망을 들춰보라는 말이다. 무엇이 이 생에 당신이 가지고 온 두근거림인가? 세상과 사람들 눈치 보며 열심히 살지 않았나? 이만하면 되었다. 이제 이 생에 온 내 진짜 원함을 궁구 할 때이다. 남의 집살이 그만하고 내 집으로 돌아갈 때이다.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면 이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30~50대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고 반응이 있겠냐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인간'과 '욕망'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일 수 있겠다. 질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표정에는 온도차가 있으나, 반가워하는 쪽이 훨씬 많다. 아무도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데 신선하다는 눈치다. 어떤 이는, 곰곰이 생각해보고 다음번 만날 때까지 답을 주겠다고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또 다른 이는 자신은 타히티 말고 부탄으로 가면 안 되겠냐고 묻길래 그러라고 말하며 왠지 마음이 짠했다. 그의 오랜 꿈을 훔쳐본 것 같아서. 어떤 이는 춤을 추고 싶다고 했고, 꽃과 식물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고 했다. 바닷가에서 펍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물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맛집 마니아 친구는 거기서도 맛집을 찾아 레시피를 탐구할 것 같다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맛집 친구가 가장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들 마음먹으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입맛만 다시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해보라고 부추기다가도, 이 정도 질문을 던진 것으로 되었다, 하며 나 역시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곤 했다.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글을 쓰는 것. 글을 '잘'쓰는 것이 아니라 내 빛깔대로 그저 쓰는 것. 글을 통해 말을 걸어보려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삶에 대한 물음과 깨달음,행복과 슬픔, 설렘과 불안, 사랑과 외로움, 이 모든 것과 접촉하며 나의 사유를 적어 내려간다. 그리고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것. 바로 당신에게. 깊고 곡진한 말투로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