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좀 써보자고 앉아있다가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를 노려보는 나를 발견했다. 안 되겠다 싶어 바람이나 쐬러 나가자, 하고 밖으로 나갔다.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한들 갑자기 글감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커피나 마시자, 싶어서 동네 카페에 들어갔다. 크지 않은 카페에 여자 손님 한 사람이 있다. 주인장과는 아는 사이 같다. 나란히 앉아있더니 내가 들어가자 주인장이 일어난다.
언제나 그렇듯, 카페라테 한잔 주세요~ 주인장이 윙윙 소리를 내면서 라테를 만든다. 그 와중에 손님은 집에 갈 채비를 한다. 주인장의 손을 덜어주려는 듯 자신이 마시던 잔을 카운터에 들고 가다가..
쨍그랑~~
고요한 카페에 제법 큰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던 나도 움찔했다. 유리잔은 산산조각 났다.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 나의 라테를 만들던 주인장은
'괜찮아. 손대지 마 내가 치울게'라고 말하지만 손으로는 내 라테의 거품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서 당장 달려가지 못한다. 여자 손님의 놀란 표정이 금방 울상이 된다.
“어떻게 선배...”
“어, 괜찮아 놔둬 내가 바로 치울게.”
내게 라테를 가져다준 후, 유리조각 앞에 쭈그리고 있던 여자를 저어~쪽으로 보내고는 찬찬히 유리조각을 치우는 주인장.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원래 손님이 잔을 깨면 장사 잘된다고 했어. 내가 깨면 아니고. 내가 깨면 그건 실수인데 이건 괜찮아. 손님이 깨는 건 좋은 거랬어.”
“ 정말? 정말이야? "
" 응 진짜야.”
여자는 다행히 믿는 눈치다. 연신 미안해라고 말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진정이 된 듯하다. 정리가 다 되고 나서 여자가 떠난다. 문을 열고 배웅까지 해주고 들어온다.
“ 아... 많이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최대한 말 걸지 않고 조용히 나의 세상에 빠져있기 좋아하는 캐릭터와 궁금한 건 못 참고 물어보고 싶어 하는 캐릭터, 둘이서 엎치락뒤치락하더니 결국은 오지라퍼가 이긴 모양이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 아니죠. 그런 거 없죠. 그냥 깨지면 다 속상한 거죠. 그런데 손님 앞에서 야 조심 좀 하지, 하면서 무안을 주면 안 되잖아요.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후배라도 그러는 건 그 친구를 존중하는 게 아니니까요.”
“아.. 네...”
'존중'이라고 말했다. 누군가 '존중'이란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입 밖으로 내놓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존중'은 다소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단어다. 일상에서는 잘 등장하지않는 책에서나 등장하는 단어. 일상생활에서 저렇게 '존중'이란 단어를 쓰는 사람이 있구나, 자신이 정의 내린 '존중'이란 의미대로 삶을 사는 사람.
“와.. 그렇구나... 근데 순발력 최고시네요.
저는 진짜 그런 정설 같은 게 있는 줄 알았어요.”
아까보다는 조금 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짓는 옆얼굴이 참 선해 보인다. 아, 입꼬리를 올렸다는 것은 내 상상이다. 사실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보지 못했다.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주변 공기가 갑자기 밝아지는 느낌. 다소 무겁게 느껴졌던 카페 안이 가벼운 에너지로 바뀌는 그런 느낌.
존중에도 연기가 필요하다. 그것도 완벽한 연기.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상대를 속이는 감쪽같은 연기. 두 가지 서로 다른 요소가 이처럼 잘 어울릴 수 있다니! 이왕지사 상대를 존중하기로 했다면, 어설프게 하지 말고 세상 완벽하게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해 줄 거 다 해주면서 은근히 상대에게 눈치 줘서 점수도 못 따고 마음도 불편해하는 어설픈 내 모습을 비춰주었던 장면.
설령 그녀가 그의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았다 해도, 자신을 배려해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속았든 안 속았든 그의 연기는 훌륭했고, 그 순간 진심이 담긴 마음은 백점이었다. 그리하여 내 마음대로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수여하노라.
'지난번보다 라테 맛이 좋네요'
왠지 기분이 좋아진 나도 살짝 연기해본다.
결국 커피도 커피 내리는 사람의 마음이 담기는 것. '존중'을 삶의 태도로 지닌 주인장이 내린 커피라서 그런지 지난번보다 맛도 좋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