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맛 디저트

아는 척하느라 애썼다

by 사과이모


대학에서 청년들의 상담을 진행했다. 그들의 꿈과 도전, 좌절과 슬픔, 상처와 고민,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 역시 함께 성장했다. 청년들을 많이 만나온 나는, 청년스러움을 말투나 분위기, 눈빛 혹은 말의 떨림 같은 것으로 느낄 수 있다. 비단 청년들만이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Z세대에 대한 상담자의 존중을 기대한다. 상담자가 꼰대인지 아닌지를 살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돌아가야 한다. 급한 마음에 직진해버리면 다음 상담은 기약이 없어진다. 요즘 흐름을 묻고, 상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되 너무 전투적이어서는 안 된다. 약간은 느슨한 듯한 태도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꼰대는 아니지만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느낌을 풍기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일하기 전에는 인사팀에서 근무했고, 그 이후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일하는 분들의 전직지원 컨설턴트로 일한 경험이 있다. 전문직 직원분들은 각자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었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계약이 종료되는 상황이라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설렘만큼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다. 40-50대 분들의 진로에 대한 고민, 남은 삶에 대한 고민은 청년들의 것만큼이나 진지했고 때로 더 절실했다. 대체로 내담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상황이라, 그것은 내게 큰 도전이었다. 그들에게는 전문가의 모습으로 비쳐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상담자이든 컨설턴트든 어떤 자리에 있건, 나와의 시간이 그들에게 만족스럽게 경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힘든 것은 '아는 척'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준비해도 내가 전부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내가 안내할 수 없는 영역을 계속 만날 수밖에 없다. 새벽 버스를 타고 평창으로 달려가며, 컨설팅을 준비하고 자료를 읽고 공부하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가 전부 다 아는 것은 불가능했다. 애초에 나는 불가능과 씨름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학생들과의 상담 역시 마찬가지였다. 꿈과 진로, 직업에 대한 상담을 할 때도, 세상 모든 직업에 대해 내가 다 알 수도 없었고, 수많은 전공 영역의 경우는 상담에서 전부 다루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모른다고 말하기 싫어서 공부했고, 모르는 것은 슬쩍 아는 척하고 넘기기도 했다.


물론 상담자는 계속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는 것은 나를 성장시켰고, 더 전문적인 상담을 진행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아는 척하느라 점점 애가 쓰였다. 내 앞에 상대에게 최고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은 나에게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긴장될수록 상담은 잘 진행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삶 자체를 이렇게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모른다'라고 말하는 게 싫어서, 뭔가 내가 다 아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주먹을 꽉 쥐고 살고 있었다. 아는 척하고 살면서 모르는 것을 들킬까 봐 마음이 종종거렸다. 무엇이든 꽉 쥐고 산다는 것은 힘이 들기 마련이다. 힘을 주고 있으면 물에 절대 떠오를 수 없는 것처럼 살려면 내려놓아야 했다.


어느 날은 내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담자는 어떤 사람이야? 어떤 모습이야?


" 내담자가 물어보는 것에 대해 명쾌하게 답변해주고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


내가 정의하는 상담자의 모습에는 '다 아는 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 애가 쓰인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정의해보기로 했다. 어떤 상담자로 살아야 더 가볍고 편안하게 상담할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내가 내린 정의는 이런 것이다.


" 내담자의 이야기를 100% 귀 기울여 듣고, 내가 아는 한에서 가볍게 여러 가능성을 제시해주되, 모르는 부분은 '모른다'라고 말하고, 잘 찾아보고 사유해 본 후 전달하는 상담자"


이런 것도 모르는 부족한 '나'가 아니라 모르는 것은 인정하고, 성실히 찾아보고 충분히 사유해 본 후 전하는 '나'가 훨씬 건강한 상담자라는 생각이 들자, '모른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한결 쉬워졌다.


학생들 앞에서는 '잘 아는 어른'이고 싶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내담자들에게는 '어리다고 무시할 수 없는 전문가'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긴장했던 것이다.


그동안 아는 척하느라 애썼다.

그랬던 나를 따스히 안아줘 본다.


비단 상담 장면에서만이 아니라 내 삶의 여러 영역에서 '내가 옳다' '내가 안다' '내 의견이 맞다'는 종횡무진 활동 중이다. 한 번에 갑자기 내려놓아지지는 않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아본다.


'어?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하며 자유를 느낀다. 모른다고 표현하는데에서 오는 자유의 맛이 가볍고, 달콤하다. 이게 뭐라고 그리 꽉 잡고 있었는지...


디저트 가게를 연다면, 자유 맛 디저트를 내어놓고 싶다. 디저트 이름은

'아는 척하느라 애썼다. 모른다고 말하는 자유'


너무 긴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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