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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Mar 30. 2023

마음의 통증


유년시절, 나의 의문 중 하나는 얼마큼 아프면 아프다고 해도 되느냐였다. 그 정도 아픈 건 좀 참아야지,라 말을 듣고 무안해졌고, 이렇게까지 아픈데 왜 이제 얘기하냐는 호들갑에 놀라기도 했다. 아프다고 해도 되는지, 조금 더 참아야 하는지를 나만 안다는 것. 그건 누구도 정해 줄 수 없는 내 느낌과 나와의 관계라는 것. 그럴 때.. 그러니까 몸이든 마음이든 아플 때, 나는 혼자구나..라고 느끼며 마음이 좀 그랬다. 나 혼자 마음속으로 1부터 10까지 중에 7만큼 아프면 말하기로 정해두기도 했다.


사람마다 통증에 대한 감각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내가 보기에 저 정도는 참을 수 있지 않나 싶은 상처에 호들갑을 떠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렇게 아픈데 참고 있다니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사람마다 몸이나 마음의 어느 부위가 특별하게 섬세하거나 무감각하기도 한 걸까.


나 여기가 마이 아파요, 하고 드러내면 이러쿵저러쿵 판단하지 않고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냐고 묻고 싶다. 이건 내 느낌이고 내 감각인데.) 그랬구나, 네가 마음 여기가 아프구나. 네가 이 통증 때문에 견디기 힘들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허용해 주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건강한 영혼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그때그때 자신의 느낌을 존중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나는 관계에서 공감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한 공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우리는 타인의 신발을 신어볼 수 없다. 각자가 살아온 삶역사가 다른데 어찌 가능하겠는가. 그의 감정을 완전히 공감한다는 것은 나의 착각에 지나지 않다.


사람마다 약한 장기나 몸의 부위가 존재하듯이, 자꾸 나를 주저앉게 하는 마음의 통증이 있다. 나에게 그것이 슬픔이라면, 누군가에게는 불안, 두려움, 우울, 무기력일 수 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판단하지 않고 그의 감정을 존중해 주는 것. 네가 지금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어주는 것.


"나는 그게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아픈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지금 네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그 느낌 그대로 아무 문제없어. 충분히 느끼고 아파해도 돼"

지금 이렇게 슬프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무기력한 당신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머리로 짐작하며 아는 척하지 않고 모르는 마음으로 당신을 안아주고 싶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완전한 공감'이 아니라 어떠한 내 모습도 괜찮다고 수용해 주는 '따스한 안아줌'이 아닐까 한다. 공감은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슬쩍슬쩍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등 뒤로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당신의 표정을 일일이 볼 수 없더라도, 당신의 감정을 세세히 공감할 수 없더라도, 가늘게 흔들리는 당신의 등에 기대어 내 숨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괜찮다고. 내가 여기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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