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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Apr 25. 2023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가끔 스코틀랜드 소녀가 쓴  <내가 사랑하는 열한 가지>라는 목록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사소하고 작은 것을 사랑하는 소녀의 마음을 느껴본다. 천천히 따듯해지는 내 마음을 느껴본다. 


글쓰기 수업을 할 때, 첫 수업에는 좋아하는 것의 리스트를 적어보는 활동을 한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나 이렇게 살아있어요. 나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이게 나예요.' 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니, 처음 글쓰기 주제로 접근하기에 좋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좋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묻는 이유는 좋아하는 무엇 너머에 있는 좋아하는 마음을 보기 위함일 것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의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 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작게라도 짐작할 수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말하던 친구가 있다. 20대부터 내내, 그녀의 이상형의 조건 1번은 변하지 않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학창시절부터, 그녀의 이상형은 조금 고집스러운 데가 있었다.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다른 조건들을 제쳐두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1번이라니. 나는 그 마음이 궁금했다. 좀체 자기 마음을 보여주지 않던 그녀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술자리에서 슬쩍 그 마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마음을 잔잔히 읽으며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와 손잡게 되면서 나는 그녀를 더없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 속에는 묵직하고 오래된 진심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꽤 오래 방황을 했던 그녀는 매일 밤을 울며 보냈다고 했다. 아무도 그런 그녀를 이해해주지 못했다고. 그 어두컴컴한 터널 같은 시간에 늘 강아지가 함께 해주었다고 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오며 사이사이 많은 친구들이 혹은 연인들이 우정이나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지나쳐가는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을 떠나지 않은 존재. 많은 이들에게 당연히 있는 커다란 기둥 같은 그 존재가 그녀에게는 작은 강아지였던 것이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경험이 왜 그 시기에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읜 사람에게 누구도 쉽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다. 말은 그런 순간 가장 몹쓸 것이 된다. 그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아준 존재.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다고, 어쩌면 인간보다도 더 진지한 마음이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 다정한 존재가 그녀와 긴 시간 마음을 나눈 것이다. 그 소중한 존재는 몇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지금의 그녀는 강아지가 떠날 때 같이 엉엉 울어주던 따듯한 사람과 새끼 고양이 같은 아이들과 편안히 살고 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에게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 너머에 닿을 때까지 찬찬히 물어보고 그의 걸음을 기다려주는 마음. 서서히 다가가는 마음, 그렇게 사랑 쪽으로 잔잔하게 마음을 흘려보내는 사람이고 싶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을 핑계 삼아

나는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내 마음이 조심스럽게 당신에게 고개를 돌려 묻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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