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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Apr 16. 2023

모과나무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요? 모과나무예요. 봄비 내린 후에 공원에 갔더니 연한 붉은색 꽃이 화사하게 핀 거예요. 얼마나 반갑던지 탄성이 절로 나왔어요. 모과나무는 5월에 꽃을 피우는데.. 날이 따뜻했나 봐요.


저는 일 년에 나무 한그루를 정해두고 그 친구에게 의지해서 한 해를 건너가고 있어요. 그렇게 한지는 몇 해 되었는데 처음 시작은 법정스님의 '한 나무를 두고 사계절을 바라보라'라는 문구를 보고 시작하게 되었지요. 올 초에 공원에서 나무를 물색했어요. 노란 열매를 보고 싶은 마음에 모과나무로 덜컥 정했지요.


한 해 나무 한 그루를 데리고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귀한 경험이에요. 우선 마음으로 의지가 돼요.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날, 은근히 가서 나무 주위를 서성이면서 말을 걸어요. 혼자 산책이 심심하다고 느껴질 때는 친구랑 약속한 것처럼 만나러 가기도 하고요. 올 2월부터 거의 매일 산책길에 이 친구를 보러 갔는데.. 그때만 해도 나무 하나 댕그라니 있었어요. 그런데 3월이 시작되니까 매일이 다른 거예요. 새순이 손톱만큼씩 자라고 비온 후에 가면 한 뼘 훌쩍 자라기도 고요. 매일 연두들이 선물처럼 나무에 솟아나는거예요. 그 신비로움이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무처럼 자라고 있겠지요? 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웃고 울고 상처받고 후회하고 다시 마음잡고 열심히 살아보고 그러다 또 좌절하고.. 그런 일상이지만 그 사이사이에 내가 1밀리씩은 자라고 있다는 걸, 그 친구를 통해 보게 돼요. 나도 자라고 있구나.. 나도 너처럼 자라고 있겠지, 그러면 나무는 '그러엄' 하고 빙그레 웃어주는 것 같아요. :)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리운 사람을 나무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아요. 보러 가면서 그 사람이 잘 지내길, 안부를 빌어주는거예요. 그 시간만큼은 그 사람이 거기 서 있고 내가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보고 싶은 사람들 다 만나고 살 수 있는 인생이 아니니까 이렇게 나무를 브릿지 삼아 나무도 사랑하고 그 사람도 사랑하는 거죠. 사랑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나무 한그루 데리고 한해살이가 더 근사하게 느껴지죠.


예전에는 나만 볼 수 있는 나무, 구석에 있고 남들은 알 수 없는 나무를 정하기도 했는데요. 요즘은 그냥 공원이나 길가에 누구나 볼 수 있는 나무로 정해요. 내가 마음 못 써주는 때에 오가는 사람들한테 사랑받으라고. 많이 컸네, 이 꽃 예쁘다, 나무가 푸르르다.. 그런 말들을 오가면서 나 대신 누군가 해주면 나무가 덜 외로울 거 같아서 :)


이 친구 이름이 있는데요. 비밀이에요. 이 친구랑 저랑의 비밀. 그런 비밀친구가 하나 생기는 것도 좋지요. 아이들이 자랄 때, 매일 보러 가는 나무가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으며 유년시절을 보냈고 20대에도 가끔씩 읽고 엉엉 울던 감성이었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어떤 이야기도 들어줄 나만의 나무가 있다는 것, 그 나무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순환에 자신을 내맡기며 변화해 가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요.


나무 한 그루 가지고 뭔 호들갑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런데요, 살아가는 게 그렇잖아요. 별 말도 아닌 누군가의 말에 의미 부여하고 상처받고 그러는 게 우리들 인생인데. 나무 하나 정해서 이름 붙여주고 예뻐라 해주는 좋은 의미 부여도 좀 하면 어때요. 어른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딨 어요. 우리 다 나무들 보기에 어린애들인데.


나무에 기대어서 한 해 건너가 보아요. 이름 붙여주고 자주 가서 예쁘다, 기특하다, 잘했다, 칭찬해 주면요. 그 친구가 지난해보다 몇 센티는 더 클지도 모를 일이죠. 사랑받아서 무성해진 나무만큼 내 사랑도 무럭무럭 자라는 한 해가 되겠지요. 그렇게 우리 올 한 해 건너가 보아요. 가을에는 노란 모과열매를 가지고 글로 인사드릴게요.



-사과이모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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