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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May 05. 2023

도움과 거절

계단을 오르는 데 아주머니 한 분이 무거워보이는 짐을 끌고 올라가신다. 마침 비 오는 날. 나 역시 우산과 짐을 들고 있어서 선뜻 도움을 드리지 못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서는 세상 속 편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간다. 50대 정도로 보이시는데 괜히 나서서 도와드리겠다고 하면 본인이 나이 든 것처럼 느끼실 수도 있어, 예전에도 도와드린다고 했다가 거절당해서 무안했던 적이 있잖아, 제법 그럴듯한 시나리오지만 어딘지 마음 한구석은 어둑어둑. 사람들 다 각자 갈 길 가고, 나는 곁눈질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짐을 한 손으로 모으고. 어느 타이밍에 번쩍 들어드릴까를 생각만 하고.. 그 순간! 아주머니의 작은 탄식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그때, 번개같이 다가가서 제가 같이 들어드릴게요! 하고 짐을 들었다. 그런데 짐이 엄청 무거운 것이다. 어찌나 무겁던지 아이고 이거 너무 무겁네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혜성처럼 등장한? 나의 손길에 아주머니는 아이고아이고 고마워요~ 하신다. 가까이서 뵈니 60대는 훌쩍 넘으신 것 같다. 나의 시나리오는 와장창 깨지고, 몇 걸음 가니 계단은 끝나고, 연신 고마워하시는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진작에 들어드리지 그랬냐고 내 안의 목소리는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나의 소심한 오지랖. 나는 왜 누군가를 도와주는 순간조차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눈치를 살피는가 말이다. 그냥 성큼 도와주면 되는데. 열 번을 도왔을 때 열 번은 따뜻한 화답을 받았으면서. 이십 번쯤 도왔을 때, 한 번 정도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라는 응답을 받았다는 사소한 증거를 앞 세워서 소심해지는 것이다. 도와주고 싶지만 거절당하기는 싫은 마음.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는 거절일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꼭 내가 무안해야 할까.


도와드릴까요?  네. 도와주세요.

도와드릴까요? 아니요. 제가 혼자 해 볼게요.


두 문장은 다르지 않다. 상대는 내 질문을 듣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정직하게 답한 것이고, 나는 어느 쪽이든 그의 대답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다. 아니요, 쪽이라고 해서 내 호의가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호의'는 '좋을 호'와 '뜻 의'라는 한자어가 결합된 단어다. 좋은 뜻으로 시작된 호의는 내 마음에서 시작되기에 제일 먼저 내 마음을 따뜻한 사랑으로 물들인다. 다음으로 상대에게 혹은 그 장면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가슴에 따스함을 전한다. 관심받고 사랑받은 기억으로. 세상에 나 혼자는 아니구나, 아직 세상은 따듯하구나, 하는 일상의 작은 장면으로. 미세한 세포 차원일지라도 사랑은 내 쪽에서 세상 쪽으로 흐른다.


잘 물어보는 사람이고 싶다. 내 생각으로 상황을 판단하기보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지체하지 않고, "제가 도와드릴까요?" 묻는 사람. 내 가슴에 재빨리 반응해 주는 사람. 잘 대답하는 사람이고 싶다. "네. 도와주세요", "아니요. 괜찮아요.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드릴게요. 물어봐주셔서 감사해요." 정직하게 내 상황을 알리면서 상대의 호의에 감사 표시할 줄 아는 사람.


가슴으로 질문하고, 정직하게 답하기. 어른이 되니 왜 이런 기본적인 것까지 어려운가 말이다. 유치원 다닐 때 배운 것 같은데;; 묻고 답하는 것부터 유치원에서 다시 배워야 하나. 5살 꽃들반에 입학해서 꽃들 친구들에게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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