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부모님 댁에서 쉬고 있다. 사심 있는 방문이었다. 오랜 감기몸살로 몸이 허해지고, 사랑받음이 필요한 시기란 걸 체감하였던 것이다. 그래, 사랑이 있는 곳으로 가자.
어머니의 사랑은 본능적인 생명에 닿아있다. 그녀는 집에 있는 온갖 것을 먹이고 싶어 한다. 끼니마다 아무 걱정 없이 무언가를 먹게 된다. 너 이거 먹을래? 아 맞다. 이것도 있는데 이거 먹어볼래? 이것 좀 더 먹어..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었으니, "얼른 일어나 아침 먹어. 먹고 또 자" 아... 이 말은 비몽사몽 간에도 유혹적이다. 그러니까 먹고 또 자도 되는 거지? 그래도 된다는 거지? 일어나서 먹고 다시 잠드는 일은 드물다. 먹다 보면 잠은 깨고 힘이 나고 새 날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진다. 문득, 어느 집에 들어가 그 집에 있는 음식을 다 먹어도 미안하지 않아도 되는 집이 한 사람에게 하나씩은 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어서 와 앉으라고 따끈한 밥상을 차려주는 한사람을세상 모두에게 선물할 수 있다면... 그런 정도의 사랑은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받았으면 좋겠다. 먹이고 돌보는 마음은 모든 생명이 지닌 최초의 사랑의 마음이다. '먹고 나니 힘이 난다'는 그 당연한 말을 소중히 경험하며 사랑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아버지의 사랑은 좀 더 근본적인 데가 있다. 내가 하루정도 먹고 자고 기운을 차리는 것을 보시고는, 이런 질문을 하신다. "그래, 요즈음은 사는 게 재미있으신가?" 아버지다운 질문이다.. 재미? 재미있나? 요즘 사는 게? 잘 모르겠다... 우물쭐물 하는 사이, 다음 질문이 들어온다. "그럼, 돈을 잘 벌고 계신가?" 아,,, 뭐 그냥저냥 그래요.. 두 질문 모두에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안타까움이 담긴 말투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 "아니, 그렇다면 왜 이대로 살고 있지?" 헐... 정곡을 찔린 듯 말문이 막혔다. 사는 게 재밌다면 돈은 좀 못 벌어도 그만이고, 돈을 잘 벌고 있다면 사는 게 조금 재미없어도 인생에 그런 시기도 있는 것이니 그럴만하다는 게 아버지의 철학. 30년 한 직장에서 열심히 돈 벌어 자식들을 키우던 시간이 있었다면, 은퇴 후에는 누구보다 촘촘하고 재미있게 살고 계신 내일모레 80이신 아버지. 그의 눈을 통해 지금의 나의 삶을 돌아본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아버지의 질문은, 너 지금 괜찮니? 나의 지금을 염려하는 사랑의 마음이다.
사랑이란 먹이고 돌보는 것. 그리고 다정하게 질문하는 것. 너 지금 괜찮니? 지금 마음은 어떠니? 지금 이대로 행복하니?
어머니가 주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10여 가지 곡물이 섞여있는 요상한 가루를 물에 섞어 마시며, 아버지가 내게 던진 질문을 곱씹어본다. 사랑이 내 모세혈관을 구석구석 채워주는 지금, 내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가 울렁울렁한다. 잘 살고 싶다... 이 두 사람을 더 웃게 해주고 싶다. 이 울렁임은 내가 그들에게 보내는 간절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