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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Jul 07. 2023

지구를 지키는 중


인디그룹 가을방학의 '취미는 사랑'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취미가 사랑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노랫말 에 "좋아하는 노래 속에서 맘에 드는 대사와 장면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흐르는 온기를 느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라는 가사가 다. 나 역시 사람들 간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을 애정한다. 그 장면을 기억해 두었다가 글로 담아 세상에 전하는 건, '그 순간' 다음으로 소중하다.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음악을 듣고 라디오에 귀 기울이며, 나의 온 감각은 따뜻한 문장을 발견하는 으로 향해 있다. 열심히 필사하고 기록하고 나만의 아카이빙을 만들며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맛보며 살아간다.


학창시절, 섬세하고 아름다운 심야 라디오 오프닝에 마음을 빼앗겼다. 열심히 받아 적고 좋은 문장은 편지에 적어 보내고.. 시그널이 울려 퍼지며 잔잔하게 들려오는 DJ의 오프닝 멘트가 지금의 감수성 짙은 나로 자라게 했으리라... 라디오는 어떤 것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 나이 들고는 'KBS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6시 pm) 오프닝을 놓치지 않고 듣는다. 하루 중 나를 사랑하는 나만의 소소한 의식이다. 매일 오후 5시 59분에 알람이 울리면, 그곳이 어디든 무엇을 하고 있든 멈추고 KBS Kong 앱을 켠다.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운전 중일 때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지하철 아무 정류장이나 내려서,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와서, 가만히 나무처럼 서서 귀를 활짝 열고 가슴으로 듣는다. DJ 전기현 님의 따스한 목소리를 들으며 음미하는 시간은, 지금 여기 내 가슴을 온전히 느끼는 명상의 순간이다.


드라마는 유쾌하고 명대사가 많은 '멜로가 체질'을 좋아한다. '우리는 지구를 지키고 있는 거야'라는 대사를 좋아하는데, 힘든 날은 일부러 그 장면을 찾아보기도 한다. 이 문장만 보면 어렸을 적 '로보트 태권브이' 만화가 떠오르며 왠지 위로가 되고 괜히 안심이 된다. 그래, 난 착한 편이고 지구를 지키는 중인 거야! 착한 사람, 나쁜 사람 둘로 나누는 것이 유치하긴 하지만 분명 사랑 쪽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 내 주위에는 많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오늘 내가 조금 손해 봤더라도, 호구로 보여서 좌절했더라도, 당신들의 그 착한 마음으로 이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지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사랑으로 이 지구를 지키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어리석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아닐까.


늦은 저녁, 예쁜 등을 켜고 책상에 앉아 있다. 오늘은 태권브이를 떠올려야 하는 긴 하루였다. 긴장 내려놓고 비스듬히 앉아 내가 나에게 이렇게 속삭여본다. 사과야, 아침에 일어나 여기까지 오느라고 고생 많았어.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 쪽에 있느라고 애썼어. 너는 지구를 지키고 있는 중인 거야...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이 좋은 문장에 기대어 스스로를 토닥여주는 평온한 밤이 되기를...  


지구를 지키는 사과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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