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공원에 산책 가는 것을 좋아한다. 늘 북적이는 공원은 텅 비어있고 커다란 공원의 관리인이 된 느낌. 나무들이 쉬는 공원을 조용히 거닐면 어느 순간 나도 나무인 것 같은 느낌. 나는 걸어 다니는 나무. 이 나무, 저 나무 오가면서 소식을 전한다. 비는 내일까지 많이 온다고 해. 사람들은 내일도 안 올 거야. 그러니 쉬어.
공원 산책하러 가는 길에 양 옆으로 24개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동안 수없이 지나쳤지만 개별적으로 바라봐주지 못했다. 한그루 한그루 정성껏 바라보며 걸었다. 늘어뜨리고 있는 생김새와 크기, 전체적인 색감하나같이 제각각이다. 다 같이 '벚나무'로 퉁쳐버린다면,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아름다운 나무들 여럿 있다. 집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목에 세 번째 나무는 작고 왜소하다. 맞은편 나무의 성장세에 기가 죽은 듯 보인다. 그 친구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바라봐주었다. 크고 작고 아름답고 추하고 싱싱하고 시들고, 로 그들을 판단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나무'라는 종이 지닌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생명, 서 있기, 간격, 한 자리, 조화, 변화, 받아들임, 느림, 사랑
바람이 움직이며 세상을 살린다면,
나무는 가만히 서서 세상을 살리는 존재.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꿔주니깐 착한 놈이야, 9살 꼬맹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빙그레... 얼마 전, 명상 안내를 하는데 마치고 소감 나눔에서 한 분이 '명상하고 나니까 마음이 착해진 거 같아요'라고 말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고요히 서있는 나무들은 매 순간 명상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착해진 걸까.
30분이면 올 거리를 한 시간 걸어 돌아왔다. 운동효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더 사랑 쪽에 가까워진 건 확실하다. 착한 놈?들과 함께 한 산책이라서 그랬나 보다. 피천득 선생이 딸 서영이에게 말했듯이 '천천히 먹고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며' 하루를 살아도 깊이 있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