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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Jul 30. 2023

나의 작은 산양


나는 세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위로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있었다. 성별이 다른 두 아이를 키워본 고단한 부모는 세 번째 아이에게 큰 기대를 품지 않는다. 마냥 귀엽다는 건 다른 말로 이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볼 테다,라는 열망 같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무릎에 앉혀 그림동화를 읽어주는 '사랑 독차지 시간'은 첫째 아이에게 당연히 주어지고 운이 좋다면 둘째 아이에게까지 간신히 주어진다. 셋째 이하에게는 찰나이거나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모든 집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 시절엔 좀 그랬다). 그렇다고 막중한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해야 했던 여성을 원망할 생각은 없다. 그녀는 충분히 고단했으리라. 아무튼 나는 누군가 나를 다정하게 무릎에 앉혀놓고 그보다 더 다정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준 기억은 없다. 물론 집에 책은 널려있었다. 우리집 남자어린이는 독서파이터였다. 어렴풋이 그림이 그려진 그림동화를 혼자 읽은 기억은 있다. 밤마다 책을 읽어주며 재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여성은 나름 기지를 발휘했다. 그녀는 놀랍게도 테이프를 눌러놓고 허공에서 1인 10역(및 모든 동물역)을 연기해야 하는 '엄마표 구연동화 테이프' 제작을 시도하였다. 연기는 매우 실감 났다. '아기 돼지 삼형제' 에서 늑대가 집을 입김으로 후~ 불어버려서 아기 돼지들이 혼비백산하는 연기는 실로 감탄스러웠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말이다. 덕분에 나는 그림으로 봤던 동화의 여러 장면을 상상하며 그녀의 일관된 연기에 빠져들며 잠이 들었다. 그 테이프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어린 시절 흥미진진한 목소리의 밤은, 내 가슴에 영원한 사랑으로 남을 것이다. 늦었지만 젊고 아름다운 최고의 연기파 배우, 강여사에게 구연동화 부문 최고의 '황금산양상'을 수여하노라!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순간이지만, 그걸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은 영원할 수 있지"

-쉐타오, <나의 작은 산양>


지난달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나의 작은 산양>이란 책을 처음 만났다. 중국 동화는 처음 접했는데 '어린왕자'를 사랑하는 내 감성에 딱 맞는 '중국판 어린왕자'같은 책이었다. '나의 작은 산양'은 어린 시절 잠결에 상상의 세계를 탐험하던 감각을 떠올리게 했다. 한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 손에 묻어날 것 같은 생생한 색감과 표정이 담긴 그림들.. 마음에 하얀빛, 파란빛, 초록빛이 물드는 것 같았다. 자연을 배경 삼아 한 소년이 반려동물인 작은 산양과 함께 하며 겪게 되는 사랑과 우정, 이별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잊고 있던 내 안에 작고 소중한 아이와 다시 손잡는 느낌이 든다. 어린 시절 꼭 가슴으로 배워야 하는 한 존재를 오롯이 사랑하는 감각... 이 책은 내가 아는 모든 꼬마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아니, 한때 아이였던 순수함을 기억하고 싶은 세상 모든 어른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책이다. 혹시라도 사과이모에게 책 선물을 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선물 받을 것을 각오하시라! :)



<나의 작은 산양, 예쁜 문장모음>

p.14 그럼, 정말이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이야. 원한다면 천 번이라도 더 말해줄 수 있어. 천 번이나 말하는 건 거짓말일 때뿐이지. 참말은 한 번이면 충분해.


p.93 우리 둘이 새로운 규칙을 정해보자. 이제부터 서로 따뜻한 말만 주고받는 거야. 들판도 우리말을 들을 수 있도록. 그리고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나무 밑에 가서 노란 잎사귀를 주워 오는 거지.


p.102 86,400초 가운데 우리가 과연 몇 초 동안이나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을까? 과연 몇 초 동안이나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까? (...)하루 86,400초 가운데 우리가 낭비한 시간은 대체 얼마일까?


p. 119 아기 산양은 나에게 들판을 떠나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라고 권했다. 그러나 나는 들판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아기 산양과 함께 추운 겨울을 보내지 않으면, 우리가 함께 보낸 여름과 가을을 그리워할 자격이 있을까. 앞으로 다가올 봄을 기대할 자격이 있을까.


어느 날 서로 다른 곳을 향해 멀어지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하나의 세계에 속해 있을 것이다.



#나의작은산양 #책과이음 #그림동화추천 #중국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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