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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Sep 30. 2023

언니, 내가 잘못했어


악착같이 싸우면서, 가끔 서로를 이해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두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지나가는 밤>은 최은영 작가의 단편소설이다. 나 역시 자매가 있고 자매 중에서도 어린 쪽이었기에 동생 주희의 마음이 공감되었다. 늘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하는 주희. 언니인 윤희는 그런 주희의 마음을 겉으로 모른 척하지만 마음으로 늘 만져주고 있었다. 먼저 떠난 엄마를 각자의 방식으로 그리워하고 견뎌내는 윤희와 주희.


"언니, 내가 잘못했어"


왜 이 문장 앞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와 눈물을 쏟았을까. 자라면서 내가 크게 잘못을 빌어야 했던 기억은 없다. 싸우고 화해하고 오해하고 흘겨보고 그러면서도 다시 손잡고. 그렇게 자매의 시간이 흘러갔다. 아마도 내가 맺었던 관계에서의 나를 보여주는 문장이었기에 내 가슴을 찌른 게 아닌가 싶다.


나도 조금 잘못했지만 너도 이만큼은 잘못했잖아,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에도 그냥 '내가 잘못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종종 그런 사람이었다. 싸움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다고 내가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속으로는 상대를 한껏 미워하고 비난했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나에게 지독하게 안 착했으니까. 내 마음과 반대의 말을 늘어놓고 며칠 동안 잇몸이 다 헐어버리기도 했으니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사랑받기에 그만한 방법이 없었다. 겉보기에 상황이 조화로워 보이도록 나는 내 마음을 모른 척했다. 자신이 하는 말과 마음이 어긋날 때, 사람들은 괜찮을까. 다들 괜찮나요. 묻고 싶다.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자신이 백 퍼센트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건 아닐 수 있다. 자신의 마음과 어긋나더라도, 상대에 대한 간절함이 클 때, 시소의 기울기가 내 쪽으로 기울어 있을 때, 사람들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잘못했다는 말은 그럼에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닐까.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관계를, 사랑을 지키겠다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당신과의 연결을 놓지 않겠다는 결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쪽에 서겠다는 향함. 나는 잘못하면서 살고 싶다. 실수하면서 살고 싶다. 미안한 마음을 상대에게 전하며 가슴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고 싶다. 내 마음속 깊은 지하실에서 우글거리는 지난 실수들, 후회들, 슬픔들에 더하기 하고 싶지 않다. 이제부터는 그때그때 흘려보내며 살고 싶다.


내가 잘못했어, 누군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면, 당신은 '사랑이 많은' 귀한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당신이 그에게 해 주는 말은 이런 말이었으면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게 힘들었을 텐데 용기 내줘서 고마워. 백 퍼센트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는데.. 내 잘못 들추지 않고 먼저 손 내밀어 줘서 고마워. 내가 더 오래 수렁에 빠지지 않게 해 줘서 고마워. 나와의 연결을 놓지 않아 줘서 고마워.


사랑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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