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공놀이는 세상을 살아내는 연습이다.
세상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
세상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멋대로 굴러가고
그것이 방향을 바꿀 때에는 아무런 예고도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
그 밖의 여러 우연이 정해주는 대로 구르거나 멈출 뿐이다.
요즘 나는 때때로 공처럼 되고 싶다.
안규원, <사물의 뒷모습> 중에서
나는 공원을 좋아하고, 아이들은 공놀이를 좋아한다. 공원에 가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공이 자유롭게 뛰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 바라보고 있자면 그 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인다. 어떤 안 좋은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듯이. 세상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공을 주고 받으며 물 흐르듯 흘러가고 있다는 듯이. 아무런 예고 없이 우연이 정해주는 대로 방향을 바꾸는 공을 바라보고 있자면, 안규철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공을 던지거나 굴리거나 받는 자가 아니라 내가 그저 저 공이라면 어떨까?
오늘은 공원에 사람이 한 가득. 공만큼이나 사람이 많다. 공을 주고 받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내가 그 공이라면 좋겠지만 역시나 우리는 던지거나 받는 사람이니까.
작은 아이에게 엄마가 노란 공을 던져준다. 아이는 허공을 상대로 연신 라켓을 휘두른다. 자, 간다~ 열 번을 던지면 한 번을 맞춘다. 그 한 번의 맞춤에 엄마는 환호한다. 그보다 조금 큰 아이가 아빠와 농구공을 주고받는다. 누가 봐도 받기에 좋은 공을 아이 높이에 맞추어 던져준다. 공을 받아치는 아이는 신이 났다. 아이 특유의 밝은 표정이다.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 듯한 표정. 여자 아이와 아빠는 배드민턴을 친다. 맞추기에 좋은 위치로 셔틀콕이 던져진다. 높다란 하늘 위에서 시원한 포물선을 그린다.
올려다보니 높은 하늘에 가을이 가득 들어차있다.
내게도 누군가 받기에 좋은 공을 알맞게 던져주었을 것이다. 여러 번 봐주었을 것이다. 그보다 더 많이 눈 감아 주었을 것이다. 용서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공을 잘 받게 되었을 것이다. 나에게 수없이 공을 던져준 사람들을 떠올리는 명절. 내가 아이였을 때 나에게 공을 던져주던 어른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들이 눈 감아준 것처럼, 그들이 이번 한 번이다, 하면서 봐 주었던 것처럼, 자기 스스로 마음 다치는 줄도 모르고 용서해 주었던 것처럼,
나도 알맞은 공을 던져주는 사람이고 싶다.
맞추기에 적당한 공을 던지고는
상대가 으쓱하도록 칭찬해주고 싶다.
자주 눈 감아주고 싶다.
깊이 사랑하고 싶다.
죄송합니다!!!~~
남자아이들 셋이 나를 향해 합창하듯 외친다.
다리에 공을 맞고 일어났다.
나이스 샷~ 그들을 향해 힘껏 던져주었다.
역시 공놀이는 세상을 살아내는 연습!
10월의 어느 가을, 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