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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Oct 08. 2023

반할 만한 사람


작년 겨울에 나는 우리 동네 청소부 아저씨한테 반했었다.(...) 크리스마스라든가 섣달그믐 같은 명절날엔 나는 아저씨가 안 올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영락없이 왔다. 이른 새벽 덜커덕덜커덕 아저씨의 손수레 바퀴가 언 땅을 구르는 소리를 따뜻한 이불속에서 들으면, 나의 아저씨에 대한 감사는 이 세상 밑바닥에 질서가 엄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신뢰감으로까지 확대됐다.

...

나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한테 반해왔고 나는 내가 반한 그들을 내가 발견한 보석처럼, 아름다운 꽃처럼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생각한다. 그들로 인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박완서, 살아 있는 날의 소망



최근 내가 반한 장면은 5살 꼬마가 4살 동생을 씽씽이에 태우고 공원 한 바퀴를 도는 모습이었다. 동생은 다소곳이 두 발을 페달에 모으고 형아는 동생이 넘어질 세라 조심조심 씽씽이를 돌렸다. 저 조심스러운 마음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피는 꽃 같은 걸까. 대견하고 뭉클했다. '먼저'는 작은 존재인 '나중'에 대한 안쓰러움을 지니며 평생을 살아가야 하. 태어나보니 세 번째인 내가, 새로운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바라본 '먼저'삶은 어떠했을까,  작은 사람의 마음을 잔잔히 헤아려본다.


많이 힘들다는 당신을 보쌈해오고 싶다. 손사래를 치는 당신을 손수레에 태우고 가을바람을 느낄 수 있게 공원 한 바퀴를 돌고 싶다. 이제 네 차례라고 서둘러 내리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 바퀴만 더 돌자고 한참 어린 나에게 어린 당신이 졸라댔으면 한다. 그러면 나는 에이 기분이다, 하면서 조금 더 속력을 내서 당신을 태우고 이 가을을 달리고 싶다. 그렇게 달리는 동안 고단한 당신이 조용히 울다가 이제 됐다고 내  손을 잡을 때,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으로 인해 내가 이만큼 자랐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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