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사과이모의 힐링 북클럽에서 김소영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있다. 어린이들은 모국어를 습득하며 자라난다. 수많은 단어를 처음 만나고 익히고 발음해 보면서 어른이 된다. 우리 모두 그렇게 자라났구나, 생각하니 세상 모든 존재들이 기특하게 느껴진다. 초딩 시절, 내가 흠모하던 단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유치원 때는 본 적 없는 새로운 단어였다. 음절이 여덟 개나 되고 어딘지 지식인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어른들 대화를 아무리 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를 말하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었다. 책에는 분명 있었는데. 최근 강연에 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자주 발음하는 강연자를 보고 반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는 희망이 묻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퍼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럼에도,는 다시 한번 해 보겠다는 긍정이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따듯해진다.
또 다른 내가 사랑하는 단어는 '난생처음'이다. 단어 생김이 신기하다. 스타카토처럼 리듬감 있게 발음하는 느낌이 좋다. 난. 생. 처. 음. 그냥 처음도 아니고 난생처음이라니. '세상에서 태어나서 첫 번째'라는 의미의 이 단어를 매일 경험하고 싶다. 오늘도 내일도 난생처음 사람과 세상을 감각하며 살고 싶다. 느낄 감, 깨달을 각. 느끼는 순간 깨달아지는 난생처음의 감각을 매 순간 체험하며 살고 싶다.
제주에 왔다.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쓰기로 약속한 것이 있다. 더 속도를 내서 달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쉼표를 찍으러 왔다. 지난 생의 고향인지 한번 오면 오래 머무는 이곳에 난생처음 당도한 사람처럼,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처럼, '초록빛 앞치마를 두른' 숲 속을 한적하게 거닐며 느끼고 싶다.
좋은 아침이야, 보고 싶어. 여기는 제주야.라고 발음하고 싶다. 제주에 있음 그 자체로 제주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고 싶다. 내일은 억새를 보러 간다. 가을 제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