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재 씨는 반으로 자른 계란을 집어서 내 그릇에 넣어 주고 나머지 반쪽을 입에 넣었다. (...) 무재씨의 맞은편에서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앉아 있었다.
황정은, <백의 그림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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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은 사붓사붓 불고 새들은 대화를 나누듯 노래를 부르듯 정답게 소리를 주고받는다. 내가 그쪽으로 갈까? / 여기로 와~ 이쪽 방향이야. 이런 대화일까? 혹은, 사랑해. 사랑해/ 아니야 내가 더 사랑해. 이런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일까?
서로 오고가는 돌림 노래 같은 소리의 주고받음. 사람들의 담백한 대화도 내용을 끄고 소리만 들으면 노래 같을 때가 있다. 소설 <백의 그림자> 속 은교와 무재의 대화는 내용만큼이나 소리도 애틋하다.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좋아합니다. 좋아하는데요. 좋습니다. 좋아합니다. 좋은 거지요." 문장의 끝자락만 이어 발음해 보면 꼭 노래 같고 리듬 같고 시 같고 춤 같다. 아름답다.
이 장면이 좋아서 몇 번씩 소리 내서 발음해 본다. 내가 그려놓은 어떤 모습, 조건으로써의 당신이 아니라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있는 그대로 좋으니까 좋아했던 그 감각이 생각이 날 것도 같고 가물가물한 것도 같고. 소설 속 고백 장면 중에 제일로 쳐주고 싶은 이유는 그 투박함에 있다. 이 말 외에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겠다는 군더더기 없는 태도. 담담한 정면돌파. 때로 한 문장이 한 사람의 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