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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May 02. 2022

경청 받음은 사랑 받음



상담할 때는 주로 내담자와 3:7의 법칙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내담자가 7 만큼 말하고, 상담자는 7 만큼 들어준다는 의미이다. 이때 경청에 가장 방해가 되는 요인은 상담을 잘하고 싶은 '나'가 있을 때이다. '내가 지혜롭게 상담해줘야 한다'라는 조급한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생각하느라 정작 상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대로 '나'에 대한 주의 없이 온주의를 상대에게 향하고 들으면 지금 그의 가슴이 어떠한지,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그 안에 실마리가 보인다. 그때 가볍게 상대가 꼭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은 질문을 몇 가지 던지곤 한다. 그러면 상대는 '어? 내 이야기 다 듣고 있었잖아!'라는 존중의 느낌을 받는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말 너머의 말, 경청의 태도를 통해 내 앞에 존재를 살릴 수 있다.


어느 날인가 상담 중에 내담자가 이런 말을 나눠준 적이 있다.


"선생님은 정말로 제 얘기를 들으시는 것 같아요. 퍼센트로 따지면 100으로 듣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도 100으로 듣고 말하게 돼요. 그게 되게 신기해요."


내가 이야기를 할 때, 내 눈을 바라보며 내 이야기를 들어준 고마운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 역시 누군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 소중한 경험이 있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나와 하나 되어 주었을 때의 벅참, 한 그루의 나무처럼 나를 바라보고 지켜봐 주었던 따스한 경험 덕분에 나도 내 앞에 사람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는 힘이 생겼던 것 같다.


제대로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목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귀를 내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온몸의 감각을 동원하여 상대를 느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한 존재가 한 존재에게 내어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자세이자 몸짓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미리 생각하지 않고,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 머리 굴리지 않고, 그저 가슴으로 들어줄 때 비로소 그의 가슴과 나의 가슴이 만나 진다. '경청'이란 나를 잊고 상대에게 온주의를 보내는 것! '경청 받음'은 '사랑 받음'과 동의어가 아닐까.


누군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 가득하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싶다면, 상대의 이야기를 온주의로 들어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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