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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Dec 21. 2021

뭐랄까, 모욕감 같은게 느껴지더라


"뭐랄까.. 모욕감 같은 게 느껴지더라"


지나치듯 네가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너의 눈빛이 얼핏 쓸쓸해 보인다. 네가 말하는 그 '모욕감'이란 녀석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네가 느낀 '모욕감'을 이해하고 싶어 진다.

 

'모욕감' 이란 단어를 내 사전에서 뒤적여보니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가 없다. 나는 주로 ‘속상했다’ ‘상처 받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모욕감을 느낀다'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전과 나의 사전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완전히 맞출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야 한 걸음을 더 나아갈 수 있다. 지레짐작하거나 내 마음대로 해석해버릴 때,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오해’와 ‘갈등’이 탄생한다.


사랑의 첫걸음은 “그건 너에게 어떤 의미야?”라고 질문하는 것. 내가 아는 쉬운 단어로 어떤 상황을 그려주면서 '이런 느낌이야?'라고 묻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 여럿이 같이 있는데 한 친구가 나를 놀릴 때의 느낌이야? 넌 왜 이만큼밖에 못하니, 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이야? 아니면 누군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해버릴 때의 느낌이야?

것도 아니면 나보다 힘 있는 사람이 권력을 행사하면서 나를 코너에 몰아넣을 때의 느낌이야?'


미세한 차이일 수 있지만 '모욕감'이란 단어를 그는 어떤 상황에,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 알아야 그와 나의 다음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이는 ‘어떤 말’에 모욕감을 느끼고, 어떤 이는 ‘권력자’에 의해 모욕감을 만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사람들 앞’에서의 경험이 모욕감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말’이란 도구의 한계가 그러하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경험을 토대로 각자의 언어를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내 사전에 맞는 단어가 없으면, 그와의 대화는 마치 새나 고양이와 대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야옹야옹' 하는데 아 너 기분 좋구나,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는 고양이에 대해 안다고 이야기한다.


세심하게 귀 기울이고, 상대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을 때 질문하는 것. 그것이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우리는 그때 그 순간에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은 괜찮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나도 그러했다고, 누군가에게 이해받기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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