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면 되었다. 어른들의 답변에 '안전함'이 숨겨져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저항되면서도 이내 그들을 따랐던 것 같다. 사춘기를 지나 머리가 굵어지면서 더 이상 어른들에게서 답을 찾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내 청춘에 대한 예의였다. 망설일 때도 있었지만 새로운 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실로 놀라운 경험이 펼쳐지기도 했고, 문득 돌아보니 가시밭길을 뒹굴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때는 살아있었다. 즐거움도 생생했고, 슬픔과 아픔마저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었다. 모두의 청춘에 어느 만큼 의 쓰라림이 기억되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그 날 것의 생생함 때문에. 그 가슴의 펄떡이는 생명성 덕분에.
청춘이 훌쩍 지나가는 즈음. 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 도대체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알 수가 없는 막막함. 머리로 이게 좋네, 안 좋네 계산기만 두드리게 된다. 인생의 내비게이션 같은 것은 없을까 생각해본다. 신호등보다 더 친절하게, 스위치 On만 해두면 상냥한 그녀가 길을 안내해준다. '사고다발 구간입니다. 서행하세요' 그러면 내 인생에서 일어날 사고 같은 사건도 피해 갈 수 있을까?
인생의 여름쯤 되니 알 것 같다. 누구에게 물어봐서 가는 길에 만족할 리가 없다.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가는 인생은 안전하되, 시시하다. 내 안의 소리에 주파수를 맞춘다. 내 안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가슴과의 대화시간. 내게는 그 방법 중에 하나가 '명상'이다. 하루 중 자주 1분 동안 멈춰서 내면의 소리를 듣는 1분 명상은, 내 하루가 생각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 때 다시 지금 여기로 나를 데려다준다. 아침, 저녁 명상은 하루를 생생하게 열어주고, 고요하게 닫아준다. 그렇게 내 안에 숨 쉬는 신호등에 귀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