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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괴랄랄 Dec 16. 2023

[스포주의]<괴물> 1회차의 해석(1)

내가 보려고 만든 괴물 해석

1회차 주제에 벌써... 싶지만

2회차하고 나서 더 적어보련다.


괴물에 대해서 이해하기 전에

전공 1학년 때 아주 잠깐 스친 <인식론>에서 배운

'인식'이라는게 뭔지 정리하고자 한다.

인식  =  대상을 그것의 본성 혹은 속성들을 가진 대상으로  마음(정신, 의식)에 나타내는 작용과 그 내용. 주어진 사실과 매커니즘에 따라 파악하는 심리학이나 인지과학과는 차이가 있음. 정보를 파악하고 그 것을 받아들이는 것까지가 인식이다. '정보'가 객관적 사실이라면 '인식'은 우리의 주관이 개입된다는 것.

영화의 3분의 2를 볼 때까지 나는 주어진 정보에 기반하여 범인을 찾기에 급급했다.

미나토와 요리의 이야기는 호리, 사오리 그리고 이 영화관에 있는 수십명의 세계에서 해석되었다.

영화가 미나토의 이야기를 진짜로 들려주기 전까지는 매 순간이 의심이고 수색이었다.


'정보'라는 건 '인식'의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왜곡을 거친다.


화의 1,2부는 사오리와 호리 선생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나는 요리와 미나토를 아프게 한 범인을 사오리와 호리 시점에서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사오리

그러나 기게도 '사오리'가 미나토와 함께 있었던 시간은 아주 적다. 그녀는 밥을 먹을 때가 돼야 미나토를 찾았고, 밥 먹을 때 외에는 거의 대화하지 않았다.

 다치고, 이상한 동굴에서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갑자기 차에서 뛰어내리고, 신발을 잃어버리고 등등.

누가봐도 초등학교 5학년이 겪었다기에는 이상하고 위험한 일들 뿐이지만 그녀는 대화를 회피한다.

차 밖으로 뛰어내리는 '미나토'를 데리고 그녀는 뇌사를 위해 병원에 간다.

=> 아이에 대한 무관심.


바람을 피우다가 죽은 남편임에도 정상적인 가정을 표방하기 위해 그녀는 끝까지 남편을 그리워한다.

=> 정상에 대한 암묵적인 강요.

정상적이고 틀에 벗어나지 않는 규칙에 대한 집착.


호리 선생님

'호리'선생님도 크게 다르지않다.

그의 시점은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명일 뿐이다.

아이들을 다치게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기에 호리 선생님은 너무 무관심했다.

어쨌거나 2부에서도 역시 범인 밝히기는 불가능.

다만 그의 시점에서는 그에 대한 해석이 가능할 정도의 정보가 주어진다.


아이들 앞에서 낭송한 본인의 '장래희망' 글짓기에 '나는 다시 태어났다'라고 썼다.

그의 애인은 그에게 '뒤집어진 금붕어'같다고 말한다.

=> 영화에서 '뒤집어진' '거꾸로 된' 은 '괴물'의 정와 같다.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빅 크런치.


오탈자를 찾아내는 이 그의 유일한 취미

=> '정답' '정상'에 집착하는 호리 선생님.

아마도 그는 요리, 미나토처럼 성소수자였을 가능성.

하지만 결국 '다시 태어나기'를 선택.

그게 정상이고 정답이니까.


그래서 그는 당연히 오답인 요리와 미나토의 관계를 의심조차 하지 못한다.

'남자잖아'라는 말을 밥먹듯이 하는 선생이다.

그는 상냥하지만 여전히 무관심하다.


요리 애비

'요리'의 아빠는 영화의 가장 큰 빌런이다.

사실상  이 영화에서 내가 찾던 '범인'과 가장 가깝다.

그에게 하는 행동이 조신하고 상냥한 요리는 정상이 아니다.

돼지의 뇌를 가진 비정상 품종인 것.

=> 그러나 사실상 가장 아이에게 관심이 많은 어른이었다는게 아이러니. 아이가 가진 문제의식을 눈치채고 문제를 직접 맞닥뜨려 부수려했다는 점에서 사오리,호리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 슬픈 건 상냥하고 친절한 부모이자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한 사오리와 호리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상처다. 너는 돼지의 뇌를 가졌다라고 외치는 요리의 애비만큼이나.


요리 애비는 요리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요리에게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어"라는 말을 시킬 필요가 없음.


교장센세

'교장선생님'은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손녀를 죽인 범인에 대한 정답은 영화에서도 끝내 밝혀주지 않는다.범인은 찾아주지 않으나 명확한 정보는 전달한다.

'호리' 선생님을 말도 안되는 소문에 휩싸여 사직하게 만들고, 의미없는 사죄로 '사오리'를 미치게 만드는 사람.

그러나 '미나토'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사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고 해"


 교장선생님은 가장 의아하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다. 마지막까지.

=> 영화는 교장선생님에 있어서 '인식'으로 갈 수 있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 1,2부에서 없는 정보로 인식하고 판단한 관람객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미친 디테일이 많지만 1회차에서 내가 눈치챌 수 있고 이해한 부분은 이게 다임. 사실 이것들도 해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냥 무관심.은 죄가 없다.

관심이 없어서 알지 못하는데 인식을 하는 것이 죄다.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데 판단하는 것이 왜곡이다.

난 호리 선생님과 사오리가 왜곡에 대한 벌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퀴어'라는 장르는 '로맨스'와는 완전히 다른 장르처럼 느껴진다. 꽉 닫힌 해피엔딩도 해피하게 볼 수가 없는. 사랑이 '이루어진다' 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그 말부터 앞으로의 지난한 여정이 시작되는 무한대의 비극이다. 근데 그 비극에 내가 정말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을 수 없어서 참 괴로운 시간이었다.


내가 알아채고 이해해야할 부분이 훨씬 더 많은 영화고 또 다시 보면 다르게 보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였다. 그래서 한 번 더 보고 다른 해석으로 돌아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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