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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문과 열린 문 사이에서

1부(가짜이민)

by 김미현


학교를 정한 순간, 다음 과제는 집이었다.

아이가 다닐 학교 근처에서, 우리가 살아갈 곳.


그런데 그것이 열흘 동안 맞닥뜨린 가장 높은 산이었다.




독일에는 전세가 없다.

집을 얻는 방법은 오직 월세뿐.


한 번 들어가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눌러사는 것이 기본.

그래서 빈집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집 구하기가 이민의 진짜 관문이라는 것을.


문턱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기소개서, 소득 증명, 신용 기록….

집을 보기도 전에 끝없는 서류가 요구됐다.


짧게 머무는 사람은 후보조차 될 수 없었고,

외국인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나는 새벽마다 정중한 메일을 수십 통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건 한 줄의 답장조차 없는 침묵뿐.

메일함을 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건 불가능한 미션이 아닐까.’





나는 결국 통장 잔액까지 내보였다.

선택만 된다면 그날 바로 월세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자존심은 이미 사라졌고, 남은 건 절박함뿐이었다.


출국 날짜가 다가올 즈음, 한 통의 답장이 도착했다.


“원래는 내일 가능했는데, 하루 먼저 와서 보시죠.”


그 한 줄은 어둠 속에서 켜진 불빛 같았다.

그날 아들과 나는 소리 내어 환호했다.


집은 새로 단장한 듯 깔끔했다.

그러나 부엌이 없었다.

싱크대도, 가스레인지도, 아무것도.


중개인은 담담히 말했다.

“부엌은 직접 설치해야 합니다.”


나는 멍해졌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때 아들이 조심스럽게 내 옆구리를 찔렀다.

“엄마, 그래도 학교랑 가깝잖아. 우리만의 집이면 되는 거지.”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혹시… 엄마가 이 집 싫다고 할까 봐 걱정했어.”


나는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제만 해도 허리가 아프다며 주저앉던 아이였는데,

순간은 동년배 아저씨가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다.


열두 살 소년은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 집을 지켜내려 애쓰고 있었다.

아이는 진지했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여정은 혼자가 아니라, 우리 둘이 함께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날 밤에도, 출국날 아침에도,

심지어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그 집 앞에 섰다.

빈집을 어떻게 채울지 수없이 상상하며,

주변 거리를 걸어도 보고, 곳곳을 눈에 담았다.


휴대폰 카메라는 쉴 틈이 없었다.

이미 우리 집인 양.




그러나 답은 쉽게 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 집의 선택을 기다려야 했다.


창밖의 하늘은 물색없이 맑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 집에 묶여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이민의 시작은 짐을 싸는 일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것을.


닫힌 문과 열린 문 사이에서, 우리는 서 있었다.



#집 구하기 #기다림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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